[서정주의 석남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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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정주의 석남꽃]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서정주의 석남꽃
작품선택동기
시인으로서 잘 알고 있는 서정주의 수필 작품에 대해 궁금했기 때문.
서정주의 생애
서정주(徐廷柱, 1915년 5월 18일 ~ 2000년 12월 24일)는 토속적, 불교적 내용을 주제로 한 시를 많이 쓴 한국의 이른바 생명파 시인이다.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호는 미당(未堂), 궁발(窮髮)이다.원적지는 전라북도 고창이다. 전라북도 고창에서 출생하였고 전라북도 부안에서 성장하였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주장이 있으나, 그의 아버지는 고등교육을 마친 지식인이었으며 따라서 미당도 상당히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으로 보여진다. 1933년 겨울, 개운사 대원암에서 영호당 박한영 스님 밑에서 수학했다. 1936년 경성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중퇴하고, 같은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1936년에 김광균·김동리·오장환 등과 함께 잡지 《시인부락》을 창간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전시 체제 때 다쓰시로 시즈오(達城靜雄)로 창씨개명을 하고 일제 강점기 말기에 태평양 전쟁을 찬양해 당시, 조선인의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시와 글을 통해 친일 행위를 하였다. 훗날 그는 자서전에서 그의 친일 행위에 대해여 “일본이 그렇게 쉽게 질 줄 몰랐다.”라는 고백을 한 바 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 부문에 포함되었다. 2002년 공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도 들어 있으며, 당시 총 11편의 친일 작품명이 공개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해방 후에는 당시 문학계를 풍미하던 좌익 계열의 문학적 흐름에 반대하여, 이른바 순수 문학의 기치를 내걸고 우익 성향의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여 좌익 계열의 조선문학가동맹과 대결하였다. 서라벌예술대학과 동국대학교 등에서 오랫동안 교수를 역임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고, 다수의 문학 단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줄곧 한국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나 일제 강점기뿐만 아니라, 군부 독재와 유신독재 치하에서의 처신 등으로 시인으로서의 자질과 문학적 명성과는 별도로 그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 고택이 남아 있으나 폐가로 방치되어 있다.[3]2000년 12월 24일 사망했다. 향년 86세.
작품 소개
요점정리지은이 : 서정주갈래 : 경수필성격 : 회고적구성 : 기 - 서 - 결의 3단 구성제재 : 석남꽃, 수삽석남 설화주제 : 영생에의 소박한 소망특징 : 자작시 해설의 성격과 시, 고대 설화, 현대 수필의 세 장르가 혼합되어 있음.
이해와 감상 서정주의 ‘석남꽃’ 여생을 얻고자 하는 소박한 소망으 설화를 빌려 표현한 이 수필은 그 형식면에서 매우 특이하다. 전체적으로는 일종의 자작시 해설의 성격을 띠고 있으면서, 앞 부분에는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라는 자작시를 제시한 다음, 두 번째 부분에서 시를 쓰게 된 동기를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자신의 시와 관련된 ‘수삽석남’이라는 설화를 알기 쉽게 풀어 소개함으로써 시의 의미를 보다 깊게 음미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마지막 부분에서는 석남꽃의 의미에 관련된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설화에 나오는 석남꽃은 ‘영생의 사랑’을 의미한다. 작가가 옛 설화 속의 석남꽃을 10여 년 동안이나 찾아 헤맨 것은 결국 영생에의 소박하면서도 강한 소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당 서정주의 또 다른 작품
자화상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