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언터쳐블 1%의 우정
자극적인 영화에 신물이 나서일까? 한동안 영화 보기가 무척이나 싫었다. 파격과 자극, 충격 등이 난무했던 영화들은 볼 때는 기쁨과 즐거움, 흥분감을 주었지만 한동안 그 영화에서 드러났던 자극적인 장면들이 떠올라 정신적인 데미지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잊을만 하면 기억 속에서 튀어나오는 영화의 자극적인 장면들을 떠올리며 다짐한 결심이 당분간은 영화보지 말자.라는 것이었다.
미디어가 넘쳐나는 요즘, 그 속에서 조금이나마 이슈를 만들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영화는 관객에게 자극과 파격을 약속한다. 그러다보니 관객 역시 영화를 보며 자극과 흥분을 기대하게 된다. 어쩌면 나의 정신적 데미지 역시 이러한 미디어의 풍토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 자극과 파격에서 한 발 비켜서 있었다. 오히려 극적으로 치닫는 갈등 없이, 자극적이고 파격적인 소재 없이도 영화가 감동적일 수 있고,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모든 걸 다 가진 1%의 남자 필립. 하지만 그는 사고로 목 이하로는 감각을 느낄 수도, 몸을 가눌 수도 없는 사람이다. 이와 반대로 드리스는 몸은 건강하지만 가진 것이 없고, 얼마 전까지 옥살이를 하다 나온 소위 말하는 하위 1%의 사람이다. 드리스는 그저 실업 수당을 위한 지원서에 도장을 찍기 위해 필립을 찾아오지만 필립은 그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그에게 2주 동안 자신을 간호해 볼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필립과 드리스의 동거가 시작된다. 필립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전신마비가 된 필립의 처지를 말하며 드라스를 해고하라 말하지만, 오히려 그는 드라스가 자신을 장애인으로 대하지 않아서 좋다고 말한다. 백인과 흑인, 상위 1%와 하위 1%의 지위, 전신마비와 건강한 몸, 둘의 신체적, 사회적, 인종적인 특성은 너무나 다르지만 그것이 그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서로를 친구라 생각하며 가까운 사이로 남는다.
영화를 보면, 필립에게 드라스를 해고하라 한 친구의 말대로 드라스의 행동은 어쩌면 다른 사람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조용한 오페라 무대를 보며 배우를 보며 웃는다든지, 전신 마비인 필립에게 그냥 휴대폰을 준다든지, 그에게 연애하는 방법을 가르친다든지 하는 등의 행동은 어떻게 생각하면 무례하고, 장애인인 고용주를 배려하지 않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립은 왜 그를 필요로 했을까? 필립에게는 자신을 장애인이 아닌 그냥 친구로, 편한 사람으로 대해 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모두가 자신을 친절히 대해야 할 대상, 고용주로 생각하는 곳에서 자신이 전신마비라는 것을, 상위 1%의 재벌이라는 것을 신경 쓰지 않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와 함께 있으면 내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해.”라는 필립의 말처럼 말이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만약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면 어른들은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도무지 묻지를 않는다. “그 애 목소리는 어떠니? 그 애는 어떤 놀이를 좋아하니? 나비 채집도 하니?” 어른들은 이렇게 묻는 법이 절대로 없다. 그 대신에 “그 애는 몇 살이니? 형제는 몇이나 되니? 몸무게는? 아버지의 수입은 얼마나 되니?하고 묻는다. 이렇게 숫자로 설명해야만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고 생각한다. -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유명한 어린왕자의 글귀이다. 이 글에서 말하는 숫자라는 것은 결국 사람의 본질이 아니라 그 사람을 둘러싼 외적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사람을 대하면서 그 사람 자체를 보기 보단 그 사람이 어떤 지위에 있고, 그의 재산은 얼마고, 건강 상태는 어떻고 등의 문제를 먼저 보게 된다. 필립을 장애인으로, 드라스를 전과자로만 생각했던 필립의 친구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 우리의 관념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그것이 진정한 우정인가 하고 말이다. 진짜 우정은 그 사람을 둘러 싼 지위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닌가하고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그럼 나는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는 친구가,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친구가 있는가?’하는 질문을 던져보게 되었다. 자신의 좋은 모습, 자신을 둘러싼 것들만 보여주고 싶어 하는 관계 속에서 상대방에게 나를 둘러싼 것이 아니라 나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생겼을 때의 기쁨을 드라스와 필립은 분명히 보여준다. 피상적인 관계에서 상대에게 나를 보여주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생겼으면,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