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경제의 파행
1950년대 한국사회는 분단구조가 정착되면서 기본적으로 미국의 요구가 관철되는 재벌 발전의 길을 확정하고 그것을 위한 구조적인 재편이 이루어진 시기라고 할 수 있는 데 이 과정의 결정적 계기는 한국전쟁이었으며 이 매개는 미국의 대한원조였다.
마이어협정으로 설치된 합동경제위원회는 원조에 관한 사항을 총괄 할 뿐만 아니라 한국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결정권을 지니고 있다. 이 원조는 대부분 시설재가 차지하는 비율이 아주 컸다.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한국의 경제적 상황은 군사비 지출 등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다. 그럼에 따라 한국의 경제와 재정은 미국의 원조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원조물자의 독점적 배정은 원조의 내용 및 성격과 함께 한국자본주의를 출발점에서부터 관료독점자본으로 형성하게 했다. 이러한 원조물자는 대부분 소비재이거나 소비재적 원자재로 구성되었으며 그 결과 삼백공업(제분, 제당, 방적)으로 불리는 소비재 공업만이 발달하였다.
따라서 1950년대의 공업화과정은 불평등구조의 심화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국가의 조세와 금융, 자원배정에 있어서 정책적 지원은 정치권력과 밀착된 대자본의 형성하게 만들었고 이들은 집중적 특혜를 받았다.
이러한 미국의 대한 원조가 미친 영향은 다음과 같다.
① 미국의 대한 원조는 주로 국방비 충당을 위한 군사원조의 목적에서 제공된 것이다.
② 한국 정부는 원조물자분배와 대충자금계정에 의한 재정투융자 환율정책 등에 의해서 수입대체산업을 추진하고 기업가들에서 정치적 통제 망을 확립하였다
③ 원조물자에 의존한 수입대책산업은 삼백산업 위주의 소비재산업과 함께 제한적 형태나마 생산재 공업의 발전을 가져왔다.
④ 잉여농산물의 도입에 따른 저곡가정책은 농업생산성을 저하하고 농촌을 황폐화시켰다.
⑤ 미국에서 과잉 생산되는 소비재만 원조 받았기 때문에 한국경제의 원조의존성향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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