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개발에 따른 투자전략
한국전쟁 후: 한국전쟁이 끝난 후 1950년대의 청계천은 식민지와 전쟁을 겪은 나라의 가난하고 불결한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슬럼지역이었고 위생면에서나 도시경관면에서 청계천을 그대로 두고 서울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었다.
청계천의 복개 후 2003년까지: 1955년 광통교 상류 약 136m를 시작으로 1958년부터 본격적으로 복개되기 시작하였다. 1958년 5월∼1961년 12월 광교에서 청계6가 동대문운동장까지, 1965년∼1967년 청계 6가에서부터 청계8가 신설동까지, 1970년∼1977년 청계 8가에서부터 신답철교까지 복개되었고 광교에서부터 마장동에 이르는 총 길이 5,6km, 폭 16m의 청계고가도로가1967년 8월 15일 착공되어 1971년 8월 15일 완공되었다.
청계천 주변에 어지럽게 늘어선 판자집은 헐리고 대신 상가건물이 들어섰으며, 토사와 쓰레기, 오수가 흐르던 하천은 단장된 아스팔트 도로로 탈바꿈하였다. 시원하게 뚫린 복개도로와 고가도로위에는 자동차가 쏜살같이 달렸다. 반면 청계천 복개로 주변에 살던 많은 사람들은 봉천동, 신림동, 상계동 등으로 강제로 이주를 당하였다. 또한 광통교와 같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도 함께 훼손되었다.
복개 이후 약 40년동안 청계천은 도심산업의 중심지로서 도로 양편으로 공구상, 조명가게, 신발상회, 의류상가, 헌책방, 벼룩시장 등 크고 작은 상가들이 밀집해 있었으며 복개도로와 고가도로에는 하루에도 수십만 대의 차량들이 지나 다녔다.
그러나 청계천은 오히려 서울에서 가장 복잡하고 시끄러운 곳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청계천 주변을 낙후시키고, 서울의 이미지를 해치는 주범으로 지적 받고 있었으며, 청계고가도로를 이루고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는 근대화·산업화의 상징이 아니라 개발시대의 무지가 낳은 흉물로 인식되고 있다.
청계천의 복원: 이명박 시장 취임과 함께 시작된 청계천 복원은 2003년 7월 ~ 2005년 9월까지 청계천로 및 삼일로와 그 주변 약 6km에 이르는 공사구간을 세 구간으로 분할하여 생명의 근원인 물 순환 체계를 회복시켜 자연의 자생능력에 대한 생태계를 복원하고 자연이 있는 도시하천을 조성 하고자 하였다. 2005년까지의 만 2년동안의 공사를 통해 현재의 청계천은 대한민국의 얼굴인 서울시가 자연과 인간 중심의 환경도시로 거듭나는 원천이 되었다.
2) 청계천 복원사업의 과정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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