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공리주의의 행위의 원칙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다. 삶의 목적은 쾌락이나 행복의 추구이고 선한 행위는 쾌락과 행복의 공리성(유용성)으로 본다. 대표적인 공리주의자로는 벤담과 밀이 있다.
어떤 행위는 행복을 증진시키는 경향을 가질 때 옳은 행위이고 반대의 경우는 그른 행위이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이란 행위자의 행복이 아니라 행위의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의 행복이다. 공리주의는 각자가 자기 이해를 추구해야 한다는 견해인 이기주의에 반대하며, 어떤 행위를 그 결과와 무관하게 옳거나 그르다고 여기는 윤리이론과도 대립한다. 또 행위자의 동기를 바탕으로 행위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윤리이론과도 다르다. 공리주의에 따르면 나쁜 동기에서 한 행위도 옳은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고찰
공리주의적 사상은 벤담보다 훨씬 이전의 사상 속에도 있다. 인생의 가치에 관한 쾌락주의적 이론은 BC 5세기초 키레네 학파의 창시자 아리스티포스의 윤리학과 그 후 약 100년 뒤에 나온 에피쿠로스와 그 추종자들의 금욕주의 윤리설 등에 나타나 있다. 한편 스토아 학파와 그리스도교의 윤리설 속에는 이와 대립하는 윤리적 보편주의의 씨앗이 있다.
영국 철학사에서 공리주의적 철학을 가진 최초의 인물로 17세기 도덕철학자 리처드 컴벌런드 주교를 꼽는 역사가도 있다. 컴벌런드보다 한 세대 뒤에 영국의 프랜시스 허치슨은 도덕감 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보다 분명한 형태로 공리주의적 견해를 주장했다. 그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낳는 행위가 최선"이라는 주장을 내세웠을 뿐만 아니라, 최선의 결과를 계산하기 위한 도덕 산술의 형식을 제시했다. 스코틀랜드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회의론자 데이비드 흄은 덕(德)의 기원을 공리의 관점에서 분석하기도 했다. 벤담은 18세기 여러 사상가의 저술에서 유용성의 원리를 발견해냈다고 말했는데, 여기에는 흄 이외에도 산소를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화학자이자 신학자 조지프 프리스틀리, 프랑스 감각철학의 권위자 클로드 아드리앵 엘베시우스, 이탈리아의 법 이론가 체사레 베카리아 등이 포함된다.
공리주의 사상의 또 다른 줄기는 신학적 윤리학의 형태로 나타났다. 성서학자이자 철학자인 존 게이는 신의 의지를 덕의 기준으로 보고 신의 선함에서 신은 인간이 자신의 행복을 증진시키기를 바란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벤담은 인간은 행동할 때 항상 자신의 쾌락을 최대화하고 고통을 최소화하려 한다고 굳게 믿었다. 따라서 그는 쾌락과 고통이 인간행위의 원인이자 규범적 행위 기준의 토대라고 주장했다. 한편 그가 말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원칙은 주로 입법의 원리로 제시된 듯하다. 입법가는 개인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함으로써 전체 사회의 행복을 최대화하는데 힘써야 한다. 비행(非行)에 대해서는 벌을 줌으로써 이웃에게 해를 끼친 행위는 행위자에게 이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벤담의 주요저술로는 〈도덕과 입법 원리 입문 An Introdution to the Principles of Morals and Legislation〉(1789)이 있다. 벤담은 19세기초의 많은 젊은이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고전경제학의 선구자 데이비드 리카도, 존 스튜어트 밀의 아버지 제임스 밀, 법 이론가 존 오스틴 등이 여기에 속한다. 20세기 들어서도 많은 철학자는 공리주의 이론을 다양한 형태로 수정·발전시켰다. 대표적 인물로는 G. E.무어를 비롯하여, 과학철학자이자 도덕철학자 스티븐 툴민, 옥스퍼드 언어학파의 도덕이론가 패트릭 노얼 스미스, 옥스퍼드 분석철학자 J. O. 엄슨, 하버드 도덕철학자 존 롤스, 영국계 오스트레일리아 철학자 J. J. C. 스마트 등을 들 수 있다.
□공리주의의 본질
공리주의는 우리는 어떤 행위를 해야 하는가?라는 실천적 물음에 대답하려 하며 그 답은 가능한 최선의 결과를 산출하는 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벤담은 해야 한다, 옳다, 그르다와 같은 술어는 공리주의적으로 해석할 때에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벤담이나 밀은 모두 쾌락과 고통이 인간행위에 동기를 부여한다고 믿었다. 예컨대 밀은 그와 같은 동기부여를 행복이 인간행위의 유일한 목적이기 때문에 행복의 증진은 모든 인간행위를 평가하는 기준이라는 주장의 기초로 보았다.
19세기말 공리주의를 주도한 사람은 케임브리지대학의 헨리 시지윅이다. 시지윅은 벤담이나 밀의 윤리적 술어에 관한 의미론 및 동기부여론을 배격하고 공리주의가 ‘상식의 도덕에 대한 체계적 반성에서 나왔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공리주의를 지지했다. 그는 상식적 도덕의 요구사항 대부분을 공리주의 관점에서 정립할 수 있다고 보고, 공리주의가 상식적 윤리설의 모호함과 모순에서 비롯되는 여러 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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