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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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 를 읽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학창시절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면서 학교를 다녔을까? 라며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해 볼수록 난 학교와 부모님의 인형처럼 지내왔던 것 같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학교에 가고, 학교에서 짜여진 시간표대로 수업을 하고,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가고, 집에 와서 숙제를 하고 잠을 자고 늘 같은 일상으로 나의 10대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안하는 그들이 원하는 틀 안에 박힌 사고를 하며 지내왔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안돼서 인지 교사의 생각보다는 학생들의 의견에 더 많이 공감이 되었다. 개개인의 학생들의 개성을 인정하고 중시하지 않고 학생 모두를 하나로 만들려는 단편일률적인 생각에 빠져있는 학교라는 곳에 대한 반감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교사들은 공부 잘해서 좋은 성적으로 사범대에 들어가서 졸업해서 선생님이 되는데, 이렇게 성적으로만 잘라서 선생님들을 만들어내니깐 인격적으로 너무나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교사가 돼서 죄 없는 우리들만 피해 받는다.’ 고 자주 이야기를 했었다. 대부분의 교사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몇몇의 교사들은 어린 우리들의 눈에 보기에도 교사로서의 자질이 부족해 보였지만,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대접받고 성적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을 무시하고, 편애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가장 큰 이슈는 2004년에 있었던 ‘강의석군의 종교의 자유운동’에 관한 것이었다. 나 역시 고등학교를 미션스쿨을 다녔는데, 1주일에 한 시간씩 드리는 예배시간과, 종교라는 이름의 기독교 수업을 들었다. 우리학교는 교회 재단의 사립학교였기 때문에 기독교수업에 대한 할애가 컸다. 이사장님은 교회의 목사님이셨고,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 또한 교회의 장로님들이셨고, 학교의 대부분의 교사들도 학교 교회에 다녔고, 목사님도 두 분이나 계셨다. 이것만 보아도 우리학교가 교회에 많이 치중했던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이는 학교에 다니던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전교생 모두가 아침자율학습시간에 목사님의 주도아래 아침예배를 드려야만 했고, 부활절추수감사절성가대회 등의 각종 행사를 참석해야만 했다. 이 당시의 난 이게 당연한 것 인줄 알았다. 많은 학생들이 예배를 드리고 싶지 않다고 말만 해왔지 우리는 시위를 할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의 결단과 용기에 많이 감탄했었다. 이렇게 몇몇의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의 자율성과 인권을 되찾기 노력하지만 대부분이 그렇듯이 어린것들이 뭘 아냐는 식의 무시와 통제로 청소년들의 의견은 묵살되기 십상이다. 이번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와 MB정부에 반대하는 촛불 집회가 벌어졌을 때에, 여느 성인들보다도 10대 청소년들이 더 열심히 집회 참가에 열정적이었다. 피켓을 만들고, 촛불을 들고 목소리 높여 소리를 지르는 사회는 그들을 강제로 연행해가고, 학교는 그들을 정학 등의 처벌을 내렸고, 정부는 청소년들의 뒤에 배후세력이 있다고 믿었다. 그 누구도 그들을 이해해주지 않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모두들 청소년들은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무시했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 누가 시켜서 거리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청소년들의 생각과 의견은 늘 미완성적인 것으로 보는 그들의 생각처럼 청소년들은 어리지 않으며,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충분히 전할 수 있는 인격체인데도 말이다.
책의 본문에 이런 내용이 있다.
‘지긋지긋한 학교를 깨끗이 때려치우는 꿈, 몽둥이를 든 교사 앞에서 폼나게 한번 개겨 보는 꿈, 등교 길 교문 앞에서 선생들과 선도부 눈치 보지 않고 즐겁게 등교하는 꿈, 춤추는 언어의 폭력 앞에서 “닥쳐” 라고 소리 질러보는 꿈,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한 학생회 대표들이 교장 앞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이번에도 묵살하면 가만 있지 않을 것” 이라며 으름장을 놓는 꿈 아이들은 그렇게 매일 꿈을 꾸며 살아간다.’
학생들이 바라는 학교는 큰 것이 아니다. 그들을 존중해주고, 지지해 주는 작은 것인데 입시와 성적이라는 잣대로 그들을 나누고, 평가하는 악습은 바뀌어야 한다 생각한다.
이렇듯 아직은 청소년들에 대한 의견에 공감이 많이 가지만, 책 안에 있는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도 많은 고충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위로는 교장선생님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아래로는 학생들을 살펴야 하는 그들의 노고가 안쓰럽기도 했다. 이번에 다시 부활한 학업 성취도 평가(일제고사)만 보아도 일부 학교의 교사들이 일제고사에 반대해 시험을 보지 않거나 그날 체험학습을 가는 등의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그들은 교사지위를 박탈당하고 강제적으로 교단에서 나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학교장들은 교사들의 이런 행동에 반감을 가지고 앞장서서 교사들의 퇴직을 요구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이들 교사가 교단에서 물러서는 것을 원치 않는데도 이들의 선택은 올바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학교장과 사회와 다른 의견을 제시해서 그들의 교권을 빼앗아도 되는 것인가? 학생들에게 참됨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가 자신의 목소리 하나 제대로 내지 못한다면 과연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싶다. 학교라는 곳은 다름 이라는 것에 너무 겁을 내고 있으며 배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이건 교사건 학교의 뜻과 다르면 그들을 내쳐버리는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은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대부분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9년의 의무교육을 비롯해서 고등학교와 대학까지 8살에 학교라는 곳에 입학해서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학교라는 곳을 나오게 된다. 우리가 학교에 다니는 이유는 나중에 우리가 사회에 나가서 필요한 기본지식과, 대인관계, 사회성 등을 배우기 위해 다니는 곳이다. 수많은 학생들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자신의 10대 시절을 모두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나 역시 10대 때의 기억을 이야기 하라고 한다면, 중고등학교 때의 기억을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 만큼 우리는 학교 안에서 많은 것을 행하고, 배우며 여러 기술들을 습득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10대를 모두 바친 학교라는 곳은 우리에게 다니고 싶은 곳이라기 보단 다니기 싫은 곳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박혀 있는 경우가 많다. 왜 우리에게 학교는 긍정적인 이미지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가득 차 있을까? 학교에 대한 만족도가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왜 우리는 학교에 다니기 싫어할까? 싫어하면서도 계속 다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생각에 대한 물음이 내 머릿속을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우리 부모님들이 학교를 다닐 때나 내가 다니던 때나 지금의 청소년이나 학교에서의 상황은 크게 변화된 것이 없다. 많은 매스컴과 여러 단체들은 늘상 학교에서의 인권문제가 나아져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 말하지만, 달라지지 않고 악순환이 돼가고 있다. 다음 세대의 아이들을 위해 청소년들의 인권교육의 기회를 늘리고, 그들의 권리를 되찾아주고, 그들을 존중해주는 문화가 하루 빨리 보편화되어 청소년들이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학교가 즐거운 곳, 너무나도 가고 싶은 곳으로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