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영상매체] 모노노케 히메와 반딧불의 묘 -표현방식에 따른 이미지의 대비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1) 이론적 배경
(2) 두 작품에 대한 객관적 고찰-연구의 토대
모노노케 히메
반딧불의 묘
(3) 두 작품에 대한 이미지적 고찰-분석
3.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아니메라는 말은 우리에게 그 다지 친숙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니메란 속칭 재패니메이션을 일컫는 말로 animation을 일본식 발음으로 줄여서 부른 것을 말한다. 하지만 재패니메이션이라는 단어가 미국의 디즈니사에 자국의 애니메이션과 비교하기 위하여 사용한 상업적성격을 띄는 단어라면, 아니메(アニメ)는 일본이 자신들의 애니메이션을 정의한 용어라는 점에서 그 차이점이 크다. 기무치가 아니고 김치가 맞는 단어인 것처럼, 아니메 역시 재패니메이션이 아닌, 아니메 그 자체인 것이다. 아니메와 같이 붙어 다니는 단어로 오타쿠라는 단어가 있다. 오타쿠란 본래 집이라는 뜻이나, 가다가나를 사용해서 읽게 되면 그 뜻은 ‘이상한 것을 연구하는 사람’ 이라는 뜻이 돼버린다. 영화를 연구하고 문화를 연구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지만,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코스프레 등을 연구하는 것은 이상한 사람이 돼버리고 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매니아 이상의 뜻을 가지는 단어이니만큼 그 도가 지나치다 할 수도 있으나, 애니메이션도 일종의 학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아직까지 애니메이션에 대한 저질인식이 뚜렷이 남아있는 단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미국의 상업 애니메이션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매니아’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반면에 아니메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오타쿠’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본다면 아니메에 대한 우리나라의 의식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니메는 하급문화에 그 저변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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