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개혁 고액권 발행과 리디노미네이션 논설문
우리나라 최고액권인 1만원권이 발행된 지는 내년이면 25년이 되고, 같은 기간 동안 우리 경제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물가는 30여 년간 11배 오르고 경제규모는 100배로 커졌다. 향후 10년간 물가가 연평균 3~4%씩 상승할 경우 1만원권의 실질가치는 6600~5500원 수준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또한 전체 화폐 중에서 1만원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87%에 이르는 상황에서 이제는 이전의 1만원권의 역할을 대신할 적절한 고액권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 10만원권 자기앞 수표가 통용되고 있지만 은행이 발행하고 정부가 보증하는 등 단일화되지 못한 복잡한 절차로 인하여 발생하는 발행비용과 거래수수료, 관리비용등을 따져 볼 때 현금보다 훨씬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재사용이 불가능해 유통기간이 평균 일주일에 불과하지만 고액권 수요가 커지면서 수표발행이 급증하여 해마다 수표발행 관리에만 6000천 억 원 정도가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낮은 최고액권의 액면가 액으로 인해 우리는 10만 원 권 자기앞 수표를 마치 현금처럼 사용하고 있으며 그로인해 불필요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수표통용에 따르는 배서의무나 신분증 제시와 같은 확인절차를 거치며 발생하는 숨어있는 시간적, 금전적 비용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최근 위조 수표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큰 부담이다. 많이 쓰지만 돈처럼 편하게 쓰지 못하는 현실을 인정한다면 고액권을 공식화폐로 인정하는 것이 실리를 위해서 필요하다.
물론 화폐 제도 개선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된다. 새 화폐를 찍어 내야하고, 금융회사의 ATM(현금입출금기)이나 화폐인식 프로그램, 각종 회계프로그램과 장부들을 모두 교체해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폐제도를 개선할 경우 수 천 억원의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 경제규모와 화폐단위 사이의 괴리를 메우고 있는 수표발행에 엄청난 돈이 허비되는 것을 감안하면 고액권 발행은 당연한 이익이 된다.
일부에서는 고액권을 발행할 경우 부패가 조장될 수 있고 물가가 오를 수 있다며 지금은 적당한 시점이 아니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부정부패를 이유로 고액권에 반대하는 것은 마치 신용카드만 사용하게 한다면 모든 부정과 비리는 척결될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린다. 부패는 그에 따른 적절한 제도를 통해 규제해야 하는 것이지 그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고액권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부패문제와 화폐를 연결시킨다는 발상자체가 문제이며 물가상승이 우려된다는 고액권 반대 논리는 소비자들을 과하게 낮추어 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고액권 발행과 더불어 논의 되고 있는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이란 인플레이션의 진전에 따라 화폐로 표현하는 경제 량의 숫자단위가 너무 커져 초래되는 국민들의 불편함을 해소할 목적으로 화폐단위를 절하하는 것을 말한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그 필요성을 공감하지만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토론과 논의가 필요하다. 거래의 편리를 위해 0을 여러 개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점과 상거래와 회계의 편의성은 인정한다. 하지만 하이퍼인플레이션에 시달린 개발도상국들의 상황을 우리나라에 비추어 도입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이다. 우리나라 물가는 이들 국가들에 비한다면 안정되어 있으며 앞으로 극심한 물가상승에 시달릴 가능성도 낮다.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과 시급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에 반해 현재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할 경우는 궁극적으로 경제주체들의 대응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위험한 상황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의 후유증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심리적 불안감과 경제사회적 비용의 증대인 것이다. 또한 화폐가치 절하로 인한 혼동을 초래할 수 있다. 이는 가격에 대한 착각으로 인해 소비를 더욱 진작시킬 수도 있지만, 부동산의 가격은 상대적 인플레의 발생으로 더욱더 올라가게 되고, 이 경우 서민들의 생활만을 더 힘들게 하는 부익부 빈익빈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전에 두 차례 리디노미네이션을 실행한 경험이 있다. 1953년도에 100분의 1로 절하하는 한편 원을 환으로 바꾸어 시행했으며 이를 다시 1962년 10분의 1로 절하하는 한편 다시 환을 원으로 바꾸는 통화 개혁을 시행했다. 그 결과는 통화조치의 후유증으로 유통구조가 마비되고 이에 따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산업 활동이 크게 위축되는 등 제반 경제상황의 급격한 악화로 예금봉쇄의 완화조치가 불가피했다. 과거의 디노미네이션도 과잉통화의 흡수, 퇴장자금의 양성화 등 당초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사회 경제적인 부작용만 초래한 채 실패로 돌아간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현재의 모든 은행 프로그램과 모든 화폐와 회계단위, 모든 회계 인프라 교체로 인한 엄청난 경제적 비용 지급은 고액권 발행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물가급등으로 인한 서민경제의 고통 증가,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의 우려 등으로 무늬만 교체하는 장점보다도 단점이 훨씬 크다. 한국의 화폐 액면이 높다는 인식은 국민들 사이에 있어 왔다. 하지만 0을 떨어버리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는 데 대해서는 막연한 공감대는 있을지 모르나, 시급하게 꼭 왜 해야 되는지 논리적 설득력을 찾을 수 없다. 우리는 체제전환국도 아니고 초인플레를 겪고 있지도 않고 택시를 타면서 수억이나 수천만 단위의 화폐를 지급해야하는 것도 아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을 통한 화폐의 대외 위상제고는 터무니없는 발상이다. 따라서 리디노미네이션은 과거의 상황과 비교해 볼 때 사회적 혼란과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경제시점에서는 부적절한 정책이다.
화폐 제도 개선 방안은 중요한 문제이며 국제화 시대의 다국적 시장경제 체제 안에서 국가경제의 장기적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또 모든 정책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각각의 장단점을 가지기 마련이다. 위에 열거한 고액권 발행의 장점도 있지만, 뇌물 액의 증가의 우려와 고액권 발행은 신용카드 이용사회 정착을 오히려 방해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들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은 지속적인 물가상승 소비침체로 인한 돈의 흐름이 막혀버린 상태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 악순환이 거듭돼 경제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고액권 발행은 국민 편익 증진에 비해서 들어가는 비용이 적고 효과가 단기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경기부양을 위해 백방으로 묘안을 찾아내야 하는 정부로서는 고액권 발행이 소비 진작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시기상조의 리디노미네이션보다는 고액권발행을 적극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한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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