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난징 우 시소 주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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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난징 우 시소 주를 다녀와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오늘부터 중국의 이다. 2박3일 우리의 첫 여행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국경절 많은 날 동안 기숙사에만 있어야 될까 걱정 했지만, 다행히 우리는 장차장에게 여행이 가고 싶다고 생각을 말했고, 지루하지 않은 날들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날씨도 좋았고, 들뜬 마음으로 아침 일찍 우리는 학교 정문에서 출발하였다. 버스를 타고 가흥을 벗어나는길.. 중국에 와서 첫 여행이라 그런지 재밌는 여행이 될것 같은 기분에 마음은 들떠 있었다. 첫째 날, 난징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오래 걸려야 2-3시간이면 될줄알았던 나의 생각과는 달리 국경절이라 그런가 6시간이상을 달려야 했고, 가는 도로위에서 또 한번의 놀라움을 느껴야 했다. 도로위에 잦은 사고모습은 중국의 도로교통을
山陵올라가는길, 江전체모습 다시한번 보고 느낄수 있었다. 그렇게 달려 난징의 중산링(山陵)에 도착하였다. 먼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갔고, 여러 가지 요리가 나왔지만, 역시나 내 입맛에는 중국요리가 맞지 않아 조금밖에 먹지 못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뒤 중산링(山陵) 안으로 들어갔고, 가이드는 시간을 정해 주고 몇시까지 자리로 와서 모이기로 한뒤 자유 시간을 주었다.
중산링(山陵)으로 들어가는길... 옆으로 나무가 굉장히 많았다. 뭔가 공기도 좋은느낌이였다. 그렇게 사진도 찍고 떠들면서 들어갔고, 계단도 엄청 많았다. 저 계단들을 다 어떻게 올라갈까 막막했지만, 중간 중간 단체사진도 찍으면서 올라갔고 점점 올라갈수록 난징(南京)의 중산(山)국가지정 명승풍경지역이라 그런지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보기 좋았다.
중산링(山陵)은 중국 건국의 아버지 쑨원(文-손문선생)의 묘다. 쑨원(文)의 생전 희망을 받들어, 중화민국 정부는 1929년 6월 1일에 이곳에 그의 유해를 안장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를 보기위해 많은 줄을 서있어서 나는 미쳐 들어가지 못했지만, 조사해본 바로는 중심 건물은 궁전식으로 지어졌고, 3개의 출입구 위에는 쑨원(文)의 삼민주의를 받들기 위한 민족, 민권, 민생이라고 씌어 있고, 내부로 들어가면 중심에 대리석으로 된 중산(山)의 좌상이 있고, 벽에는 쑨원(文)이 손으로 쓴 건국대강의 전문이 적혀있다고 한다. 그 안쪽으로 들어가면 대리석으로 된 중산(山)의 관 상부가 보이고 천장에는 인민 정부의 국기가 그려져 있다고 한다. 그렇게 중산(山)의 중심 쑨원(文)의 묘를 보고 내려왔다.
다시 버스를 타고 열강루(江) 로향했다. 열강루(江)는 중국 강남지방의 4대 명루(名樓)로 꼽힌다. 겉모습은 웅장하고 멋있었다. 외관으로 볼때 열강루(江)는 4층이였고, 뭐야 그냥 일반적인 절같은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안았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보니 7층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층층마다 볼것 들이 너무 많았다. 제일 꼭대기 층인 7층으로 올라가 밖으로 나와 보니 풍경이 정말 좋았다. 날씨가 조금만 더 맑고 조았더라면 저기 멀리 있는 강건너에 있는 무한까지도 다 보일 수 있었을 것 같았는데 그 점이 좀 아쉬웠다.
그렇게 열강루(江)에서도 많은 사진을 찍었고 많은 것들을 눈에 담아 내려왔다. 첫날의 일정은 이것으로 끝이 났고, 우리는 이제 숙소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왔다. 점심에 제대로 먹지 못한 우리들이기에 저녁은 각자 알아서 해결하기로 가이드와 얘기를 했고,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저녁을 먹으러 부자묘거리(夫子苗)로 나갔다. 난징(南京)시내는 내가 사는 가흥(嘉)보다 훨씬 도시였다. 저녁이라 그런지 거리도 화려했고, 사람들도 엄청 많았다. 주위의 골목골목 옷가게도 있고, 쇼핑할 상점들이 많아 눈이 바빴다. 이것저것 필요한것들을 하나씩 사고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피자헛으로 들어갔다. 점심을 제대로 멋지 못한 탓인지 배가 너무 고팠고, 정신없이 먹었던 것 같다. 중국에와서 처음으로 가본 피자헛은 성공적이였다. 한국과 맛이 별반 다를게 없었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와 각자 이야기하고 사진찍은거 보고 웃고 떠들고, 그렇게 첫날밤은 지나갔다.
10월2일 우시(无)-渚 소주(州)-拙政
둘째날 아침이 밝았다. 8시쯤 우리는 각자 아침을 먹으러 호텔 식당으로 내려갔고,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여행둘째날부터 왠 비...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는데 결국 여행중에 비가 온다. 그렇게 날씨탓의 가라앉은 기분으로 밥을먹고 올라와 준비를 하고 내려갔다.
차에타고 오늘 처음으로 갈 여행지는 우시(无)의 渚(태호선도) 라는곳이였다. 우리는 배를 타고 건너편의 섬으로 간다. 여전히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도 사람이 많았다. 중국 가는 곳곳 정말 사람이 없는 곳은 없었다. 여기에 또한번 역시 중국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
渚다리,사랑의자물쇠, 拙政풍경 고, 우리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타보는 배라 그런지 다행이 멀미는 없었고, 그저 신나고 재밌었다. 그렇게 배를 타고 도착한 渚(원두주) 내려서 다리를 건너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다리위에서 사진도 찍고, 점점 걸어들어가다보니 절같은 것이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불이켜진 빨간 촛불 앞에서 무언가를 빌고 있었고, 소원을 비는건가 보다하고 나도 따라 소원을 빌었다. 그 옆으로 좀 가다보니 작은 골목이 있었고, 옆으로 작고 귀여운 상점들이 많았고 그 위에는 등불들이 걸려 있었다. 아기자기한 골목이 였다. 그렇게 길로 길로 가다가 열쇠들이 많이 걸려 있는 곳이 있었다. 이 열쇠는 연인들이 이름을 새겨 달아 놓는 것인데 한번 닫으면 다시는 열수 없게끔 만들어져 있는 열쇠였다. 오래된 것인지 정말 녹슨 열쇠들도 많았다. 그 안으로 들어가보니 열쇠처럼 달아 연인들이 달아놓는 편지통들도 있었다.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이 귀엽고 아기자기 하고 이런 문화는 한국과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쪽으로 돌아 가보니 사람들이 사는 흔적이 보였다. 사람들이 사는 마을인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가이드는 첫날도 그랬지만 둘째날이 오늘도 마찬가지로 자유시간을 주고 같이 구경만 했고, 설명을 따로 해주지 않아 눈으로만 구경하고 사진만 찍고 넘어가는 여행이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