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의 선례들 로마 교황 지위의 추락
당시의 교회는 획일적인 것을 강요했다. 교회의 일반적인 권위와 관행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고문 받았고, 죽게 되었다. 반대자들이 확산되어가자 교회는 그들의 집과 땅, 돈, 심지어 다른 자원들을 압수함으로써 처벌하였다. 중세 교회의 권력과 부는 교회의 통치권들을 약화시켰고 시민의 변화는 16세기 종교개혁에 의해 일어나기 시작했다.
○ 로마 교황 지위의 추락
14, 15세기 동안에 교회 지도자들은 다방면에서 매우 부패하였기 때문에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교황과 고위 성직자들은 종종 왕의 삶처럼 살았다. 교회는 성직매매, 교회 매매, 면죄부 판매 등을 통해 금고가 불어나기 시작했고 유물 판매는 또 다른 남용의 원인이 되었다. 성자 또는 순교자를 존경받는 대상물로 숭배하며 많은 주교와 군주들은 유물을 제조하거나 높은 가격으로 입찰하였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인 Helena(헬레나)는 갈보리의 십자가 세 개를 발견했고, 이 유물은 전 유럽에 매우 비싼 가격으로 매각되었다. 1215년에 4번째 라테란 의회(the Fourth Lateran Council)는 유물을 판매하려면 바티칸으로부터 진짜임을 증명 받게 함으로 또 다른 수입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것은 아마도 종교개혁 이전의 교회의 주된 상업의 행위이었을 것이다.
1517년 게르만 도미니크회 수도사인 테첼(Johann Tetzel, 1465-1519)은 교황의 면죄부를 팔았다. 그는 면죄부가 사하지 못할 큰 죄는 없다. 면죄부는 산 자의 죄뿐 아니라 죽은 자의 죄도 사할 수 있다.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연옥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이 될수 있다고 선언했다. 테첼은 마틴 루터를 자극하여 그의 95개조 논제를 쓰도록 즉각적인 기회를 제공했다. 테첼이 면죄부로 구원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을 루터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교회가 이러한 부를 추구하는 것은 영적으로 교육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교회는 평신도가 성경을 읽는 것을 금지하였고 성직자가 성경을 사용하는 것을 저지하였다.
교황의 부패는 또한 종교재판에 의해서 입증되었다. 1280년에 니콜라스(Nicholas) Ⅲ는 많은 사람들을 이단으로 몰리게 했다. 이단적인 믿음 또는 행동을 위한 처벌이 선포되어 이단의 죄를 가진 사람은 채찍질, 고문, 생활 징역을 받거나 화형대에서 화형에 처해졌고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종교개혁을 통한 세계의 부흥
14, 15세기의 르네상스는 16세기의 종교개혁의 길을 준비하는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개인에 대한 강조
중세시대는 교회의 가르침이나 전통에 근거하여 개인을 거의 강조하지 않고 다양한 자연현상에 대한 호기심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없었다. 그와는 반대로 르네상스 시대는 자연미에 대한 인간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했다. 르네상스는 천 년 동안 잠들어있었던 신체의 상상력을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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