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정책론 사회적 급여의 성격
미르달은 현물급여는 그것이 표적으로 하는 수혜집단에게 정확히 전달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현금급여보다 효과적이라고 주장하였다. 현금급여는 급여의 소비시점에서 소비행위를 통제할 수가 없다. 예컨대, 아동의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정부가 제공한 현금을 가족에게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고 아동복지 향상을 위해서는 일부분만 소비할 수도 있는데, 현금급여는 바로 이러한 부분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에 복지경제학의 고전적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현금이야말로 수혜자에게 최대의 선택을 보장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그들의 효용을 극대화 할 수 있기 때문에 현금급여가 최적의 급여형태라고 주장한다.
현금급여가 우월하다는 논리는, 개인의 선호를 극대화하는 것이 곧 전체사회에도 이익이 된다고 즉, 소비자 각자가 자기자신의 복지를 위해 행한 선택이 모이면 그것이 곧 공동의 복지를 증진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가정한다.
한편, 현물급여의 정책효과성이 우월하다는 주장은, 공동체가 특별히 관심을 두는 문제에 대해 자원을 집중시키는 데에는 현금급여에 비해 현물급여가 더 뛰어나다는 점에 근거를 두고 있다. 현물급여를 옹호하는 주장의 핵심은 집합적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어느 정도 구속할 수 있는 사회통제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금급여를 옹호하는 보다 그럴듯한 주장은 소비자 주권에 근거한 주장이다.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는 소비자 주권 주장은 강력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본질적으로 소비자 주권은 자기결정권에 근거한 것이다. 즉, 어떠한 심리적 편익 혹은 물질적 편익을 얻든 그 편익을 위해 자신의 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어떠한 미래이건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미래를 위해 자신의 자원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가 개인에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지신이 구입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 소비자는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없게 된다. 더구나, 사회복지의 영역에서, 소비자가 자신이 어떤 서비스를 받아보기 전에 그 서비스의질에 관해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리블린)
현금급여를 옹호하는 또 다른 주장은 현금급여는 관리운영이 간편하다.
또한, 현금급여는 개인의 존엄성을 보장해 줄 수 있다. 즉, 현금급여는 급여를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자신의 계획대로 운영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현물급여에 따르는 낙인이 현금급여에는 거의 따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현금급여는 소득측면에서의 빈곤을 완화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라는 주장도 있다. 게리 비틀리스는 빈민에 대한 현행 공공부조의 급여를 모두현금급여로 전환할 경우 현재와 같이 현금과 현물이 혼합된 제도체계에서보다 “훨씬 더 적은 비용으로 공식적 빈곤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현금급여가 효율적이라고 하는 이러한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복지’라는 것은 단순히 빈곤선 이상의 소득만을 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빈곤을 제거하기 위한 모든 정책이 현금급여를 채택하고 이를 욕구의 증명에 기초하여 분배하게 된다면, ‘공식적인 빈곤’은 제거할 수 있을지 몰라도 기존의 현물급여를 통해서 대처하던 많은 문제들-열악한 건강수준, 영양부족, 주택부족-을 오히려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현금급여는 빈곤선에 근접한 수준으로 주어진다 하더라도 현물급여만큼 폭넓은 보호를 어떤 경우에도 제공할 수가 없다. 따라서 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급여형태는 현금급여가 아니라 현물급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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