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으면서 머릿속이 꽤 오래 어수선했다. 저자는 신경외과 의사로 일해왔다고 한다. 끊임없이 환자들의 뇌 수술과 예후 관찰, 그리고 그들이 놓인 극단적 상황을 지켜본 사람이다. 누구보다 죽음과 삶을 가까이서 마주했던 그가, 어느 날 폐암 말기 판정을 받는다. 갑작스럽게 본인이 의사인 동시에 환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상황은 독자로 하여금 묘한 긴장감을 준다. 어떤 의학적 지식을 가졌든, 결국 한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영역에 다다른 느낌이다.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글쓴이의 진심 어린 고민이 떠오른다. 생과 사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루지만, 그 속에서 저자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행동하려고 했는지 지켜보게 된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제목에 대한 생각이 길게 이어졌다. 숨결이 바람으로 바뀐다는 말은 상당히 시적인 표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그 말이 단지 아름다움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스친다. 몸 안에서 살아있는 공기가 결국 바깥으로 떠돌게 되는 상징처럼 다가온다. 숨의 흐름을 늘 감지해야 하는 의사로 살았던 저자가, 마지막 순간마저도 하나의 흐름으로 바라본 듯하다. 독자 입장에선 조금 낯선 감각이다. 질병의 증상이나 임종의 모습은 익숙한 장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글쓴이가 진솔하게 풀어낸 이야기에 차츰 빠져들게 된다.
그 책에 담긴 글들은 저자의 의료 현장 경험과 개인적인 깨달음이 합쳐진 형식이다. 전문 의료진으로서의 태도, 환자들과의 진솔한 대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뇌 구조에 대한 설명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고 느꼈을 때 생긴 무력감과 수용의 과정도 적혀있다. 그가 평소에 가졌던 인생관과 가치관, 가족과 동료 의사들에 대한 생각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어쩌면 의사가 아니라면 알기 어려운 수술 장면이나 뇌신경에 관한 묘사가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전문용어가 나오지만 너무 어렵게 서술하지 않아 읽는 데 무리가 없었다. 다만 가끔 눈앞에 그려지는 장면이 너무 생생해서 아찔해지기도 했다.
글쓴이가 실제로 폐암 말기를 진단받았을 때 느꼈을 절망감은 가늠하기 어렵다. 수술장 안에서 매일같이 죽음의 경계를 경험해왔으니, 어쩌면 그가 누구보다 담담했을 것 같다는 짐작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의사도 결국 사람이다. 남의 죽음 앞에서 마주하는 태도와, 자기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의 태도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환자들을 돌봐줄 때는 차분하게 진단을 내리던 그가, 본인의 암 진단서와 마주했을 때 느꼈던 충격은 너무나 컸다고 한다. 아내와 함께 수많은 대화를 시도했지만, 마음속 공허함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가 남긴 기록은 삶의 방향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시급해졌고, 제한된 시간이 주어졌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구체적 과제가 되었다고 한다. 완벽한 해답을 찾기는 어렵다. 어쩌면 답이 없다. 그래도 그가 의사로서 살아온 시간이 밑거름이 되어,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해 나름의 결론을 세워간 과정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가 환자들에게 느꼈던 책임감과 연민,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협업해야 했던 간호사와 다른 의사들과의 유대감까지 세세하게 알게 된다. 그 관계 속에서, 한 인간의 삶이란 서로에게 작은 흔적을 남기는 사건들의 연속이라는 깨달음이 드러나는 것 같다.
저자는 환자들의 흔들리는 눈빛을 자주 보아왔다고 한다. 머릿속에 치명적 병변이 발견된 환자들은 절망하기 마련이다. 의사로서 최선의 판단을 내려야 했고, 미세한 손짓 하나도 큰 결과를 부를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 긴장 속에서 자신은 늘 최선을 다하려 애썼다고 한다. 그런데 그 자신이 환자가 되고 난 뒤, 무대가 완전히 뒤바뀌는 것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병원의 복도에서 듣던 소리, 환자복을 입고 병실 창밖을 바라보는 시선, 간호사가 건네주는 미소, 의사들이 모여서 나누는 의학적 판단. 이 모든 게 너무 낯설고 무겁게 다가온 것이다. 몸이 아프고 희망이 희미해지자, 과거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세부적인 면이 더 크게 다가왔다고 한다.
책의 후반부를 읽는 동안, 그가 글 속에서 여러 번 호흡을 가다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표현이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건조하게 씌어있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삶을 놓지 않으려는 작은 의지, 가족을 향한 다정함이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아내와의 결혼 생활, 그리고 주변 친구들과의 관계는 그에게 남은 시간이 줄어들수록 더 중요한 의미로 변모한 듯하다. 과연 어쩌면 모든 계획이 엉켜버렸을 그 시점에서, 그는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바라봤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실제로 읽어보면, 크게 거창한 얘기보다는 매 순간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고, 가능하다면 환자를 돌보며, 때로는 글을 쓰는 일로 하루를 버텨낸 느낌이 있다. 그런 선택이 그의 마지막을 조금 더 풍부하게 만들었다고 느껴진다.
어느 부분에서는 치료 과정과 부작용에 관한 언급도 나온다. 항암 치료를 받고 부작용으로 고생하던 중에도 의사로서 다시 수술을 시도하려 했다고 한다. 그 용기가 무모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글쓴이 스스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환자들을 위해 뭔가 남기고 싶었던 듯하다. 한편으론 자기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고 짐작했다. 그러다가 몸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무너졌을 때, 결국 수술실을 떠나야 했다. 그 장면이 무척 안타까웠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수술대에 서서 생명을 살피던 사람이, 이젠 자리에서 내려와 누군가의 보호와 돌봄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때 그는 무척 무력해지고, 한편으론 받아들이는 심정으로 글을 정리하기 시작한 듯하다.
책이 끝으로 다가갈수록 아쉬움이 커졌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저자의 이야기가 독자에게 마무리되지 않은 여운을 안기기 때문이다. 글쓴이 스스로도 모든 말과 생각을 다 펼쳐내지 못한 느낌이 있다. 숨이 멎기 직전까지도 적고 싶었던 문장들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치 우리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건네고 싶었던 듯하지만, 시간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글 속에는 진득한 여백이 남아 있다. 완성되지 않은 저자의 글이 오히려 현실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그가 어릴 적 문학을 좋아했다는 점이 책 곳곳에 나타난다. 의학도이면서도 인문학에 큰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과학과 문학의 경계에서, 인간 존재를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졌을 거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수술실 상황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도, 뇌라는 기관에 대한 존엄함과 신비로움을 동시에 보여주고자 한 흔적이 느껴졌다. 그러다가 폐암으로 진단받은 후, 그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그동안 쌓아왔던 생각과 감정을 더 본격적으로 드러낸 것 같다. 그가 남긴 문장들은 모두 다듬어지지 않은 생생함이 있다.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안고 있는 순간들이 솔직하게 그려진다.
책을 덮은 뒤, 가장 크게 다가온 부분은 ‘시간은 얼마나 남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실제로 저자가 그 문제를 여러 번 고민했다고 한다. 남아 있는 시간이 짧다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두어야 할까. 미래 계획이 불투명하고, 일상의 순간마다 죽음이 떠오른다면 과연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가 던진 물음은 독자에게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 물음은 비단 생의 종말이 가까워진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닌 듯하다. 우리 모두, 지금 이 순간에도 내일이 보장되지 않은 채로 살아가니까. 저자는 의사로서 전문성을 갖추고 있었지만,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평범한 존재라는 메시지가 전달되는 듯하다.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 중 하나는, 그가 환자의 ‘이름’을 불러줄 때 느꼈던 특별한 감정이었다고 한다. 환자들이 단지 병명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으로 대하며 다가섰던 태도가 인상 깊었다. 신경외과 의사라는 직업은 미세한 실수조차 허용되지 않는 매우 고된 자리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소진되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려고 애쓴 그의 태도는 상당히 의미 있다고 여겨졌다. 그러다 자신이 환자가 된 후, 다정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려보는 경험을 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큰 위안을 느꼈을지도 궁금해진다.
어쩌면 그가 남긴 이 글은,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무거운 이론을 말하려는 목적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보통의 일상 속에서 사그라지기 쉬운 생명의 소중함을 조금이라도 붙잡으려 한 노력처럼 보인다. 그런 노력 자체가 병마와 싸우는 과정이었고, 스스로를 지탱하는 힘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죽음에 대하여 미리 대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내일도 어제처럼 계속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이 문턱에 가까워질 때, 비로소 삶을 진짜로 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아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의 곁을 지켰을까 상상해보았다. 언젠가 찾아올 이별을 알아채고 있으면서도, 매일을 버텨나간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그들은 대화 속에서 자주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때로는 격렬한 충돌이 있었겠지만, 서로의 존재를 끝까지 놓지 않으려 애쓴 것 같다. 그게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다. 정식으로 작별인사를 나눈 건 아니어도,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아끼는 마음만은 분명했다고 느껴진다. 개인적 입장에서도 가슴 찡한 부분이었다.
이 책은 암환자, 그중에서도 말기 암환자의 심경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의료 현장에서 느끼는 불확실성이나 책임감, 그리고 치유 과정의 한계도 언급된다. 책장을 덮고 나면, 진료실에 앉아 있는 의사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 환자로서 혹은 건강한 사람으로서, 의료 행위 뒤편에서 대기하고 있는 무거운 압박을 짐작하게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당사자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하는지 상상해볼 여지를 얻는다. 누군가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을 때, 그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은 평소와 다르게 눈에 들어올 것이다.
때로는 글이 마치 중얼거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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