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중공군의 개입과 국제전(33)
2. 중․미 전쟁의 체제와 전개
3. 정전회담의 개시
제 5 장 중미 전쟁
1. 다시 중국의 참전에 관하여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당시 중국이 계획했던 타이완 침공 작전은 해공군의 준비 부족으로 연기되었다. 중국은 인민군의 남진 당시 미국의 반격, 특별히 원자폭탄의 투하를 우려했으나, 마오쩌둥은 이에 적극적인 돌파를 주장한다. 미군의 인천상륙작전 이후 수세에 몰린 북한은 소련에 도움을 요청한다. 여기에는 직접적인 소련군의 개입을 기대했다기보다는 소련의 영향력으로 중국군의 원조를 구하는데 목적이 있었다고 보여진다. 스딸린은 슈찌꼬프를 통해 김일성과 박헌영을 격려하며, 중국에 의용군 파견 요청을 약속한다. 요청을 받은 중국은 10월 2일 참전을 일단 결정했으며 내부 반대의견과의 회의와 설득을 통해, 10월 8일 중국인민지원군 설립 명령이 내려진다. 이때 마오쩌둥은 저우언라이를 소련에 파견했는데, 그 배경에 대해서는 소련의 공군지원 거절 때문이라든지, 소련의 공군지원 요청을 위함이라든지 혹은 출병 결정 이전이었다는 등 여러 견해와 자료가 있다. 저우언라이와 동행한 통역 스저는 저우언라이와 린뺘오는 중국군 파병을 결정한 상태에서 스딸린에게 지원을 끌어내려 했다고 증언한다. 이때 스딸린은 장비제공을 약속하나, 후에 공군만은 지원할 수 없음을 알린다. 마오쩌둥과 중국정부는 스딸린의 통보에 동요하나 참전은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최종 결정에 스딸린은 이에 감격하였으며 10월 중순 이후 은밀히 공군을 파견해 유엔군과의 공중전에 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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