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중공군의 개입과 국제전(28)
2. 중․미 전쟁의 체제와 전개
3. 정전회담의 개시
한국전쟁 개전 직후 조선인민군이 남진하는 동안 중국은 미국과의 군사적 역량 등을 비교하면서 참전여부를 저울질 하였는데 가장 큰 문제는 원자폭탄이었다. 마오쩌둥은 원자폭탄에 개의치 않고 전쟁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인천상륙작전 후 김일성 박헌영은 중국의 출병을 요청하기 위하여 베이징으로 갔다. 이들은 스탈린에게 전보를 보내어 중국이 출병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요청하였다. 스탈린은 이에 응하였고, 김일성과 박헌영에게 적을 전력으로 저지, 남에서 빨치산 전쟁을 조직, 지도부재건을 명하고 물자 원조․중국군사력원조 상의 약속 등을 전보로 보내면서 북한 지도부를 진정시켰다.
중국은 10월 2일 참전을 결정하였다. 중국 내에서 출병신중론이 강하였지만 마오는 필사적으로 설득하였고 10월 8일 펑떠화이를 총사령으로 하는 중국인민지원군 설립에 관한 명령이 내려졌다. 소련의 원조 및 공군지원 문제에 관해 상의하기 위해 저우언라이가 소련에 파견되었다. 저우언라이는 스탈린과의 교섭에서 공군지원은 이끌어내지 못하지만 무기와 장비제공은 이끌어내었다. 소련공군이 참전하지 않는데 대해 중국 내부에 동요가 일어나 잠시 출병이 지연되었지만 마오쩌둥의 강력한 설득 하에 다시금 참전을 결정하였다. 스탈린 또한 이에 기뻐하여 소련 공군부대를 10월 중순 이후 중국동부에 진주시켰다. 10월 19일 중국군은 압록강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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