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중공군의 개입과 국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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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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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다시 중국의 참전에 대하여

2. 중․미 전쟁의 체제와 전개

3. 정전회담의 개시

본문내용
그런데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고 전황이 북한에게 극도로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북한에서는 소련에 보내는 전보에서 “소련의 직접적인 군사지원을 매우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중국이나 그 밖의 인민민주주의 국가의국제의용군 부대를 조직하는 것을 원조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며, 소련에서 직접 개입해 주거나 또는 중국에서 참전하도록 압력을 가해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 또한 뻬이징에 박헌영이 직접 가서 중국인민해방군 출병 요청문을 제시하였다. 여기에서도 역시 “적군이 38도선 이북 지역을 공격중인 지금 긴급히 중국인민지원군이 우리 군을 원조하기 위해 직접 출동해주실 것을 바랍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에 소련에서는 김일성과 박헌영 등 북한의 지도자를 격력하고 지원해 줄 것을 약속하는 한편, 중국에 의용군 파견을 요청하였다. 중국 측은 북한의 요청과 소련의 요청을 받은 상태에서 구체적으로 참전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공산당과 정부 안에는 출병신중론이 대세여서 마오쩌둥은 그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한편으로는 저우언라이를 소련으로 파견하여 소련으로부터 지원을 얻어내려고 하였다. 저우언라이는 스딸린을 만나 중국 내부 문제 때문에 북한에 출병하기가 힘들다고 얘기한다. 이에 스딸린은 조선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고 소련이 직접 참전할 수는 없으므로 무기와 장비를 공급하고 공군을 지원해 줄 것이니 중국에서 출병해 달라고 말한다. 그래서 10월 12일 밤 정치국 긴급회의가 열리게 되고 중국의 참전이 최종적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10월 19일 중국군은 압록강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