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한미유엔군의 북진공격(43)
2. 이승만대통령의 희망과 현실
3. 미국의 참전과 북진
4. 한미군의 북한 점령
1950년 1월 12일 미 국무장관 애치슨의 내셔널 프레스 클럽 연설이 있었다. 알류샨 열도․일본 본토․오끼나와․필리핀을 잇는 선을 ‘불퇴 방위선’으로 부르고 미국이 그 군사적 방위에 직접 관여하고 있다고 한 이 연설에 따르면 표면적으로 한국과 타이완은 방위선 바깥에 놓여졌다. 애치슨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에 상관없이, 북한과 소련이 이 연설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에 대해 브루스 커밍스가 처음으로 분석하였다. 커밍스는 북한이 애치슨 연설을 남한 공격에의 직접적인 ‘청신호’로 여기지는 않았지만, 연설 자체에는 상대를 유인하는 상대의 행동을 기다리는 전술이 숨어 있었다고 분석했다. 소련의 반응에 대해서 커밍스는 분석하고 있지 않지만, 저자에 따르면 『쁘라우다』지의 일련의 성명을 분석해보았을 때 소련도 북한처럼 애치슨 연설을 남한공격에의 청신호까지는 아니더라도 남한포기론의 하나의 재료로 보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애치슨 연설에 따르면 방위선 바깥에 놓인 남한에 관해서 미국은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지를 보면, 이승만의 북진계획을 경계하고 있었다. 다만 군사력에서는 북의 공격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대등한 병력을 가지게 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실제로 실행되고 있었다. 미국 정부는 무엇보다도 경제면의 재건, 국내 체제의 안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 미국은 북한의 공격을 전혀 예측하지 않았던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가 된다. 이것은 계속해서 논쟁지점이 되어왔다. 중국과 소련으로부터의 부대와 무기의 도착이 미 첩보조직에 확실히 포착되고 있었고, 수집된 정보들에 의견을 보태 워싱턴으로 보내고 있던 윌러비에 따르면 1950년 3,4월 북한의 공격이 분명히 예상되고 있었다. 전쟁발발 후에 미 공화당이 북한의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는지에 대해 정부를 추궁하자, 윌러비는 워싱턴에 정보를 제공했고 워싱턴의 애치슨 국무장관은 공격 의의를 부정적으로 보는 보고를 받았다고 서로 책임을 미루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해 커밍스나 방선주 교수는 매카서와 윌러비가 한반도의 위험한 정세를 파악하면서도 고의로 그 정보를 부정했을 가능성을 인정하는데, 저자는 꼭 그렇지는 않으며 매카서 등은 정말로 1950년 초여름에 전쟁이 일어날 리는 없다고 믿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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