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한미유엔군의 북진공격(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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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남북분단과한국전쟁] 한미유엔군의 북진공격(12)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한국전쟁의 개시와 미국

2. 이승만대통령의 희망과 현실

3. 미국의 참전과 북진

4. 한미군의 북한 점령


본문내용
1. 한국전쟁의 개시와 미국
미국은 1949년 12월 NSC 48을 통해 봉쇄와 반격을 주요 골자로 하는 전략목표를 책정하였고 50년에 들어서자 적극적인 봉쇄, 반격의 전략을 선언하였다. 이 두 가지 정책문서 사이에 애치슨 연설이 나온다. 이 연설문에서 애치슨 미 국무장관은 불퇴방위선을 설정하고 미국이 그 군사적 방위에 직접 관여하고 있다고 하였다. 문제는 한국과 타이완은 그 선 바깥에 놓여진 것이다. 커밍스는 애치슨 연설은 상대를 유인하는, 상대가 행동할 것을 기다리는 전술이었다고 보았다. 즉, 애치슨의 생각은 공산주의자에게 먼저 행동하게 하는 쪽이 더 낫다고 하는 상정에 입각한 교활한 봉쇄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애치슨 연설에 대한 소련의 평가에 대해 검토해 보면 남한이 방위선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북한도 소련도 애치슨 연설을 남한 포기론의 하나의 재료로 보았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그것으로 행동을 결의한 것은 아니지만, 소련은 그것으로 북한의 행동계획을 승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은 북한의 공격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였을까. 새롭게 검토된 자료를 살펴보더라도 중국으로부터 부대의 도착, 소련으로부터 무기의 도착은 확실히 미군의 첩보조직에 포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G2는 북한 정권의 뒤편에는 소련이 있다고 보고 있었으므로 소련이 세계 공산주의에 유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 시기의 침공은 없을 것이라는 보고를 하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령 앞으로의 보고가 현재의 징후를 증거로 뒷받침된다 해도 내란이 반드시 갑자기 시작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라는 문구를 통해 정보기관의 책임자와 정부관계자는 공산 측의 의도에 관해 회의적이었다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