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한미유엔군의 북진공격(10)
2. 이승만대통령의 희망과 현실
3. 미국의 참전과 북진
4. 한미군의 북한 점령
1, 한국전쟁의 개시와 미국
미국은 중국혁명의 성공, 세계 도처에서의 공산주의의 확산이라는 사태를 맞이하여 새로운 아시아전략을 수립하게 된다. 그것은 소비에트의 팽창을 막고 소련의 지배와 영향력을 축소하여 소비에트를 내부로부터 붕괴시키고자 하는 적극적인 ‘봉쇄’와 ‘반격’ 전략이었다. 국무장관 애치슨은 연설에서, 한국과 타이완을 제외한, 알류샨 열도·일본 본토·오끼나와·필리핀을 잇는 선을 ‘불퇴 방위선’이라 하였다. 하지만 방위선 바깥 지역에 관해서는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거기서는 현지의 방위노력과 유엔의 역할을 포함하여 중층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연설의 의도는 북한과 소련의 공격을 유도하기 위한 측면도 없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연설에 대한 양국의 반응을 보면, 이것이 북한이 침공을 결심하고 소련이 이것을 승인하는 하나의 재료가 된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북한의 공격을 예측하지 않았는가? 미국은 첩보조직 활동을 통해 북한으로의 부대와 무기의 이동을 거의 파악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남침 시기까지 예측하고 있었으나 소련의 주도권 아래에 있는 북한이 1950년 초여름 단계에 공격을 시작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2, 이승만 정권의 희망과 현실
이승만은 ‘북진 통일’의 생각을 품고 있었고 언제나 그것을 강조했다. 그는 북한을 도발하여 남쪽을 공격하게 하고 미국을 전쟁에 말려들게 한 다음 제2단계로 북진하여 통일을 달성한다는 전망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개전 직후 내각회의에서 ‘한반도 문제를 일거에 전면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기회’라는 발언을 했다.25일 밤에는 이승만은 단독으로 대전으로의 천도를 결정한다. 이것은 자기가 포로가 되지 않아야만 미군과 함께 돌아오고 앞으로의 행동이 가능해진다는 의도에 의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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