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한미유엔군의 북진공격(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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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남북분단과한국전쟁] 한미유엔군의 북진공격(46)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한국전쟁의 개시와 미국

2. 이승만대통령의 희망과 현실

3. 미국의 참전과 북진

4. 한미군의 북한 점령

본문내용
1. 한국전쟁의 개시와 미국
1950년 1월 12일 미 국무장관 애치슨은 알류샨 열도  일본 본토  오키나와  필리핀을 잇는 선을 ‘불퇴 방위선’이라 부르고, 미국이 그 군사적 방위에 직접 관여하고 있다고 하였으나, 한국과 타이완은 그 선 밖에 놓여졌다. 그래서 이 연설은 후에 “공산주의자의 공격에 청신호를 보냈다”고 비난받게 된다. 북한은 동아시아 방위선 구축을 목표로 하는 움직임이라 평하며 그 선은 일본, 오키나와, 남한의 제주도, 필리핀, 타이완을 지나고 있다고 인식했다. 또한, 커밍스에 의하면 이 연설은 공산주의자에게 먼저 행동하게 하여 공격에 응전하는 것이 되도록 상대를 유인하는 전술이었다. 소련 역시 남한이 ‘방위선’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곧, 북한과 소련은 이 연설을 남한포기론의 한 재료로 보았을 가능성이 있다.
남한에 관해 미국은 이승만의 북진계획을 경계하면서 북의 공격을 견딜 수 있을 정도의 대등한 병력을 갖게 한다는 것이 방침이었다. 그러나 당시 남한의 정세는 미국에 불리한 쪽으로 흐르며 이승만 정권의 위기가 있었고, 북한의 공격 가능성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 미국은 중국 공산주의자의 전투가 끝남과 동시에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군대와 물자가 북한으로 돌려질 것이며 남쪽의 위험이 정점이 될 것으로 여겼다. 또한 북한의 침공 시기는 러시아 최고 사령부의 지령, 소련의 세계정세 평가, 아시아의 다른 여러 국가에서의 공산주의 투쟁 상황에 따른 것이라고 여기며 소련이 세계 공산주의에 유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침공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후에 ‘한국전쟁이 기습이었는가’의 논의에서 책임추궁 논쟁이 일어났을 당시 정보관계자들은 북한의 군사력 형성에 관해 보고했으나 국무성에서 믿지 않은 때문이라 했다. 대부분의 견해에서도 미국은 남침의 윤곽을 알고 있었으며, 북의 군사 이상사태에 대한 정보도 가지고 있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정보를 갖는 것과 그를 해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북한의 행동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소련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힌 미국은 1950년 초여름 단계에서 소련이 북한에게 공격하게 할 리 없다고 믿었을 가능성이 크다. 곧, 전쟁발발 직전 미국은 북한군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었으나, 책임자와 정부 관계자는 공산 측의 의도에 관해 회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