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김춘추와 연개소문

 1  [한국고대사]김춘추와 연개소문-1
 2  [한국고대사]김춘추와 연개소문-2
 3  [한국고대사]김춘추와 연개소문-3
 4  [한국고대사]김춘추와 연개소문-4
 5  [한국고대사]김춘추와 연개소문-5
 6  [한국고대사]김춘추와 연개소문-6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한국고대사]김춘추와 연개소문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 金春秋(604~661)

1. 출생

2. 성장 과정

3. 즉위 이후

■ 연개소문(淵蓋蘇文, 603년? ~ 665년?)

1. 연개소문의 출생

2. 연개소문의 성장 과정과 업적

3. 연개소문의 죽음

■ 역사적 평가

1. 金春秋

2. 淵蓋蘇文

본문내용
金春秋와 淵蓋蘇文




■ 金春秋(604~661)

1. 출생
- 진지왕의 아들 龍春과 진평왕의 딸 天明 사이에서 태어남
- 진지왕의 폐위로 성골에서 진골로 族降됨
※ 족강의 배경
성골과 진골이 구별된 이유는 확실치 않으며 여러 가지 추측이 있다. 왕실 혈족집단의 분지화 과정에서 성립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진지왕은 진흥왕의 둘째 아들로 형인 동륜태자(銅輪太子)의 아들 백정(伯淨)을 제치고 즉위했으나 폐위되고 백정이 진평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때 진평왕이 진흥왕의 장자인 동륜을 직계로 내세우며 다른 왕족과 구별하기 위해 성골이 성립되었다고 하는데, 이 견해가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2. 성장 과정
1) 화랑
- 612년 화랑도에 들어가 유신의 부제가 됨
- 626~629년까지 풍월주 역임
- 화랑도 안에서 왕경의 화랑, 낭두, 낭도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향후 지지 세력을 얻게 됨(칠성우 - 호림공, 염장공, 알천공, 임종공, 술종공, 유신공, 보종공)
※ 당시 신라인의 삶에 다가온 변화
원광(541~630)이 신라 사회에 世俗五戒를 널리 퍼뜨렸다. 세속오계는 유교의 예의범절과 불교의 계율이 혼합되어 있다. 이러한 계율들은 신라인의 일상적 삶을 변화시켜갔다. 고구려, 백제와 전쟁을 벌이고 있던 당시 세속오계는 점차 신라 젊은이가 지켜야할 중요한 계율로 자리 잡았고, 삼한 통합의 정신으로 자라났다.


2) 김유신과의 관계
- 15세 풍월주 유신의 부제
- 유신의 누이동생 문희와 혼인
- 춘추의 딸 지조를 유신에게 시집보냄
- 즉위 후 유신을 상대등으로 임명(6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