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김삿갓의 성장 배경
3. 김삿갓의 생애
4. 김삿갓의 뛰어난 재능
5. 김삿갓의 방랑의 계기
6. 계속된 방랑 생활
7. 방랑 생활에 대한 평가
8. 김삿갓 이야기
9. 김삿갓의 시
10. 답사후기
11. 난고 김삿갓 문화 큰 잔치
12. 참고 자료
김병연(蘭皐 金炳淵)1807∼1863
: 조선후기 시인, 방랑시인 김삿갓.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 호는 난고(蘭皐)이며 별호는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으로 불렸다.
세상 사람들은 삿갓을 쓰고 다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삿갓'이라고 불렀고, 어느만큼 인정을 나눈 사이에서는 성(性)인 '김'을 붙여 '김삿갓'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김삿갓'이란 뜻인 '김 립(金 笠)'으로 주로 표기했다.
[사진 1]
김삿갓 사진
방랑 시인 김삿갓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 구름 뜬 고개 넘어가는 객이 누구냐
열두 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잔에
시 한 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세상이 싫은 가요 벼슬도 버리고
기다리는 사람 없는 이 거리 저 마을로
손을 젖는 집집마다 소문을 놓고
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김삿갓
2. 김삿갓의 성장 배경
① 조선 말기 1807년(순조7년) 경기도 양주에서 당대 명문 안동 김씨 가문에서진사(進士) 김안근(金安根)의 둘째 아들로 태어남.
② 다섯 살 되던 해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 때, 선천 부사로 있던 할아버지(김익순)가 반란 군과 싸우지도 않고 항복하여 역적의 집안이 되어 멸족의 화를 입기에 이름
③ 노복 김성수의 도움으로 어머니, 형과 함께 황해도 곡산으로 도망가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음.
➃ 후에 정상이 참작되어 벌이 감해지기는 했지만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돌아가시고, 어머 니는 자식들이 멸시받는 것이 싫어 강원도 영월로 옮겨 신분을 감추고 삶
➄ 나이 어린 김삿갓은 자기 집안의 사정을 모르고 자람
➅ 장원 급제한 후 가문의 내력을 알고 죄책감에 빠져 방랑 생활을 시작함.
3. 김삿갓의 생애
모든 희망을 버리고 전국을 유랑걸식하며 언문시,
국한문혼용시,해학시,고풍과시에 이르기까지 많은 명시를
지었으며 특히 풍자, 해학시는 전무후무한 절세의 것을
남겼고 공령시(고풍과시)는 후세 과거 지망자들의 교과서로
쓰일 뿐 아니라 특히 평민들의 생활상을 시로 읊어 빛나는 [사진 2]
庶民文學(서민 문학)을 남겼다. 삼천리 방방곡곡을 두루 김삿갓의 생애
살펴보며 수많은 시를 뿌려놓은 난고 김삿갓은 1863년
3월 29일, 57세의 나이로 마침내 전라도 동북땅 적벽강
흔들리는 배에 누워 기구했던 한평생을 회고하며 세상을
떠난다. 그의 시신은 3년후 차남인 익균(맏아들은 형에게
양자를 줌)이 거두어 영월군 하동면 노루목에 외로웠던 육신을 모셔 놓았다.
그는 해학시뿐만 아니라 한시의 정통규범을 파과하는 파격시의
세계를 형상화한 민중시인으로 이름이 높다.
사이트
김삿가 시 내용출처 : http://cgi.chollian.net/~kimgme1/person/kimgsaga.htm
김삿갓 이야기 내용출처 :
http://www.mct.go.kr/uw3/dispatcher/korea/culture_room/person_v.html?year=2002&month=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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