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
중공군(中共軍) 3차공세의 경과
클라우제비츠의 전쟁(戰爭)론이란?
스탈린(Ста́лин)과 모택동(毛澤東)의 전쟁(戰爭)의 정치(政治)적 이용
정치(政治) 전쟁(戰爭) 후 상황
결론
서론
중공군(中共軍)이 3차 공세시 모택동(毛澤東)과 팽덕회의 의견이 상충한 내용에 대해서 기술하는 것이었다. 중공군(中共軍)의 개입은 역사적인 의의가 있었다. 한국전쟁(戰爭)이 단순이 소련(러시아)과 미국(美國)의 싸움이 아니라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싸움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었다.
조금 특이한 양상은 소련(러시아)은 직접적으로 참여는 하지 않았지만, 중국은 참여했었다는게 다르다.
중공군(中共軍) 개입의 발생배경은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한국군과 UN군은 38선을 돌파하여 평양을 탈환했었다. 10월 중순에는 이미 서부지역에 UN군은 청천강 지역까지 도달했었다. 동부 전선에 한국군은 원산과 함흥을 장악했고 미 제10군단은 원산에 상륙했었다. 미국(美國)의 추수감사절이 되는 11월말까지 전쟁(戰爭)이 끝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팽배했었다. 이처럼 전쟁(戰爭) 조기종결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을 때 중국은 10월 19일 밤 대규모 중공군(中共軍)을 압록강을 건너 북한 지역으로 투입했었다.
스탈린(Ста́лин)은 김일성의 남침을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김일성에게 모택동(毛澤東)과 반드시 전쟁(戰爭)에 관해 사전에 협의하도록 했었다. 1950년 5월 김일성과의 회담에 모택동(毛澤東)은 만약 미국(美國)이 전쟁(戰爭)에 개입하여 북한이 위기에 처했었다면 북한을 위해 중국이 개입하겠다고 약속했었다. UN군이 38선을 넘어오자 스탈린(Ста́лин)은 모택동(毛澤東)에게 즉시 중공군(中共軍)을 참전시킬 것을 요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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