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사회의 생산력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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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원시사회의 생산력 연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우리민족의 원시부족국가 형성과 그 생산력에 관한 연구
▶원시 시대란 인류가 생선한 시초의 사회, 인류의 출현부터 고대 국가 성립이전까지를 말하는데 우리민족의 원시사회 시대는 1960년대에 이르러 식민사관의 주장을 벗어나서 두만강 어귀의 굴포리, 금강유역의 석장리에서 구석기 시대 유물이 발견되면서 구석기시대로 올라가게 된다.
▶우선 구석기 시대의 원시사회체제는 ‘원시 공동태’ 사회라고 하는데 처음에 이는 ‘군단공동태’ 사회의 형식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런 군단사회의 기초는 혈연집단이였으나, 아직 씨족단위로 조직화 되지는 못한 무리사회에 불과하였다. 정치권력의 출현도 할수없는 수준이였으며 생산물과 획득물의 소유형태는 집단총유의 형태를 띠는 완전한 원시적 평등 사회였다고 한다.
이러한 ‘군단공동태’사회의 뒤를 이어 ‘원시공동태’ 사회 후기, 즉 구석기 후기에 나온것이 ‘모계공동태’사회이다. 이 시대에는 결혼의 형태상 집단혼이 이뤄졌기에 혈통을 모계로만 따질수밖에 없었으며 남자는 여자측 씨족에 속하였다. 이런 구조의 ‘모계공동태’ 사회로 진입하는때에 중요한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간석기의 출현이다. 이 신석기 시대 후기는 농업이 현저하게 발달하여 경제생활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돼었다. 하지만 이때 까지도 잉여 생산물이 거의 남지 않아 사유재산은 존재할 수 없었고, 계급이 성립하지 않았으며 경제구조 또한 생산수단에 대한 공동체적 소유, 집단적 생산활동, 생산물에 대한 공동분배였다.
▶청동기가 등장하면서부터 경제의 구조는 변화를 맞이한다. 청동기의 사용으로 농업의 생산력 발전이 크게 이루어졌으며, 동물의 가축화도 진행되고 있었다. 금속기의 사용 -> 생산력의 발전 -> 잉여생산물의 발생 -> 계급의 맹아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사회구조는 ‘원시공동태’ -> ‘원시공동체’ 즉 계급이 발생하는 사회로 변화되었다.
이때 중요한 변화가 나타나는데 바로 혼인의 제도가 ‘군혼제(집단혼)’에서 ‘대우혼(일부일처 등)’로 발전하여 바로 ‘부계씨족공동체’ 가 나타나게 된다. 이 시기에는 공동생산, 공동분배, 공동소비의 원시적 공산성은 관철되고 있었으나 그 내부에서 서서히 잉여생산물 처리를 둘러싼 계급의 단초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시족공동체에서는 공동사업을 심의하는 씨족 평의회가 있었고, 씨족장은 대개 제사장을 겸하였다. 이런 제사장의 출현 등 계급의 맹아적 배경을 바탕으로 ‘씨족공동체’는 선조를 같이 하는 집단이라 하여 공동선조를 특정의 동물이나 식물로 상징하여 믿은 토테미즘, 자연물에도 영이 있다고 생각하여 숭배하는 원시 종교의 애니미즘, 원시 주술의 힘을 믿는 샤머니즘등이 발전하였다.
‘부계씨족공동체’ 내부에서 사적 점취가 이루어짐과 동시에 지배와 예속 관계가 형성되면서 ‘부계씨족공동체’ 는 발전하여 지연공동체로써 ‘부족공동체’가 형성된다. 즉 부계 씨족 공동체 내에서 금속의 사용은 생산 활동영역을 확대 시켜, 몇 개의 소가족으로 분화, 분화된 몇 개의 소가족은 나름의 촌락을 형성하여 자연적 인구 증가 및 외부인의 유입으로 얽혀 주변의 다른 지역에 소파촌락을 형성한다. 이렇게 형성된 몇 개의 촌락이 지역적으로 결합하여 ‘부족공동체’가 등장한다.
이러한 ‘부족공동체’의 연합체가 바로 부족 국가이다. 청동기 문화가 발달하면서부터 원시공동체의 공동체장의 지위는 강화 되었고, 이런 공동체의 연맹체인 부족군단의 장은 점차 권력자로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에 부족국가의 장을 왕으로 칭하기도 하지만 백성들을 직접 다스리기 보다는 대개 하위 공동체의 장을 통해 지배를 하는, 즉 집단적 권력의 의인화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 ‘고대국가 지배체제’를 갖추지 못하였다는 점을 입각하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부족국가’ 사회는 정치적으로 민주적 자치를 하고 있었고 경제생활에 있어서도 주요 생산수단인 토지는 공동체의 소유로서 공동체의 질서에 따라 경영되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