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일리치의 탈학교론 고찰
이반일리치의 탈학교론 고찰
탈학교론이 나오게 된 사회적 배경은 학교교육을 확대하는 것이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있는지 아니면 자본주의사회에 기여하고 있는지가 주요한 쟁점이었다. 신자유주의의 교육개편에 추진됨에 따라 공기업의 민영화, 규제완화, 사회복지 축소와 같은 논리로, 공교육에 대해 시장논리, 경쟁논리를 도입하였으며 그 결과 교육의 시장화를 추진할 것인지 아니면 공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할 것인지 새로운 쟁점이 나타났다. 1970년대 이후 교육을 통한 사회이동에 대한 신념이 깨지고 기능주의 적인 이론들의 한계가 분명해지면서 학교교육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이 광범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학교의 존재를 정면으로 문제 제기하면서 탈학교론 대안이 제시되었다. 그들의 주장은 학교의 개혁을 넘어서 학교자체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위와 같이 일리치가 탈학교론을 주장하게 된 상황과, 현재의 우리나라 상황에서 많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이에 관심을 두어 일리치의 탈학교론을 주제로 삼고자 한다.
일리치가 학교에 대해서 벌이고 있는 탈학교론의 쟁점은 학교교육이 그 구성원들인 아동들에게 학교의 종류나 장소에 관계없이 어디에서나 동일한 잠재적 교육과정을 가르치고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바탕으로 한다. 잠재적 교육 과정은 학교에서 형식적 교육과정보다 자연스레 검은 묵이 흰 화선지에 스며들 듯이 아동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다고 일리치는 믿고 있다. 그러면, 이 잠재적 교육과정의 내용은 도대체 무엇이며, 이것이 아동들에게 해롭다고 일리치가 생각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리치는 학교교육 그 자체를 통해서 전달되고 있는 잠재적 교육과정의 몇 가지 단점들을 제시하였다.
첫째로, 일리치에 의하면 학교의 잠재적 교육과정은 아동들에게 과정과 목적을 혼동하도록 가르침으로서 교수를 받는 일과 학습하는 일을 혼동하게 만들고 진급하는 일 자체가 그만큼 교육을 더 받은 것으로 면허장을 받으면 그만큼 능력이 있는 것으로 말을 잘하는 것을 새로운 어떤 것을 말할 수 있는 능력으로 혼동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리치는 학습이라는 것은 자기 의지에 의해 활동에 참여했을 때 가장 의미 있는 것이 된다고 생각했다. 일리치에 의하면 대부분의 학습은 교수활동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의미 있는 학습장면에 자유로이 참여함으로써 일어나는 어떤 의미에서는 우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뜻 이다.
둘째로, 학습은 이와 같이 자율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활동인데도 아동들은 학교의 잠재적 교육과정으로 인해서 자기들의 인격이나 학습력은 학교에서 세밀한 조작이나 계획을 받은 결과 향상하는 것이라고 믿도록 만들어지고 있으며 따라서 학교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는 환상을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된다고 일리치는 주장한다. 일리치에 의하면 잠재적 교육과정은 오직 학교교육을 통해서만 아동은 그들이 앞으로 살아갈 성인생활에 자신을 준비시킬 수 있으며,학교에서 배우지 아니하는 지식은 가치가 없고 학교 밖에서 배운 것은 알만한 가치가 없는 지식이라는 메시지를 아동들에게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전달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즉 아동들은 무비판적으로 위 같은 내용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아동들이 일단 학교의 필요성을 배우게 되어지면 기존의 사회제도들의 필요성에 대한 의심을 주저하게 되며 자율적 인간이 되기보다는 학교 또는 이와 같은 비슷한 사회제도에 얽매인 무능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한번 학교의 필요성을 받아들이게 되면, 사람들은 학교이외의 제도에 쉽게 먹이가 되어버린다. 젊은 사람들이 한번 그들 스스로의 상상력을 커리큘럼적 교수활동에 의해서 형성하는데 허용하게 되면, 그들은 모든 종류의 제도적 계획도 받아들이는 상태가 된다. 이와 같이 책임을 자기에서부터 제도에로 전가해 버리게 되면 사회는 틀림없이 퇴보해 갈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을 의무로서 받아들이게 된다면 특히 그렇게 될 것이다.” 라는 구절을 일리치의 에서 찾을 수 있듯이 말이다.
셋째로 잠재적 교육과정은 학교교육이라는 것이 사회계층 이동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달콤한 말로 대중들을 현혹한다고 한다. 특별히 가난한 대중들은 학교의 이 잠재적 교육과정에 의해서 학교교육이야말로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기 위한 황금열쇠라고 믿도록 현혹되어 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하기 위해서 의무교육제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리치에 의하면 사실상에 있어서 학교교육제도는 균등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대신에 오히려 불균등을 합법화하고 있다고 한다.
“수세대를 통해서 우리는 더 많은 학교교육을 제공함으로서 세계를 보다 나은 곳으로 개선하려고 노력해 왔다. 지금까지 이러한 노력은 실패 하였다.대신에 우리는 모든 아동들로 하여금 끝이 없는 사닥다리를 올라가도록 강요하는 일은 평등을 조장할 수 없으며 남보다 더 일찍 출발하고 남보다 더 건강하거나 더 잘 준비된 아동들을 결국은 더 유리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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