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도덕교육]아리스토텔레스의 덕과 나의 경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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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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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아리스토텔레스의 덕과 나의 경험 사례
1. 머리글
한국인, 그들에게 부족한 무엇인가가 있다고 물으신다면 과감히 말할 수 있다. 자신의 이성적 판단에 의하지 않은, 오로지 남들이 다 지키는 덕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이타심으로 가장한 옹졸함, 비겁함이라고. 혹은, 덕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위아래의 구분으로 가장한 오만불손이라고. 자신의 이성적 판단에 약하고, 남들이 지키는 절대적인 덕에만 따라가는 모습들. (물론 모든 한국인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여태까지 나는 이 모든 것들이 한국인이 지키는 덕의 비합리성이라고 판단하고만 있었는데, 답은 한국이 속해있는 동양이 아닌 서양에 있었던 것 같다. 그것도 몇 천 년 전의 사람의 머릿속에.
그 몇 천 년 전의 사람, 아리스토텔레스의 머릿속에 있던 선의 개념,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덕은 어떠하며 중용과 덕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꺼내어 나도 함께 들여다 본 결과, 해답은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내가 딛고 있는, 현재 예비교사라는 이 계단 위에서 내가 아이들에게 공부 잘하고 착해라 뿐만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그러한 조금은 추상적이고 조금은 구체적인 의무감을 가지게 되었다.
2.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길, 인간은 “자기실현”이라는 궁극 목적 안에서 행복해 질 수 있고, 그러한 자기실현은 이성적 통제 하에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성적 통제를 돕는 것은 긍정적 마인드나 노력, 끈기, 성실, 자긍심, 유머감각 등의 “덕”이라고 하였다. 이는 우리나라의 이타를 강조하는 덕과는 많이 다른 개념이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덕을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지적인 덕과 도덕적인 덕으로 구분한다. 지적인 덕은 교육과 학습에 의해 발생한 덕이며, 도덕적인 덕은 주변 환경에 의한 습관화로 이루어지는 덕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습관화와 즐거움의 정의로 이루어진 도덕적인 덕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인간 개개인이 행복해지기 위해 가져야 할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이란 어떤 조건하에서, 어떤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일까?
덕을 실천할 때에는 그 덕을 실천하는 사람의 마음이 즐거워야 한다. 즉, 실천하는 덕 안에 즐거움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자신의 긍정적인 의지로 실천하는 덕이어야 그때서부터 비로소 그것이 참된 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타인의 의지로 이루어진 강요나, 생각 없이 무작위로 행해진 덕은 겉 무늬만 덕일 뿐 그 속 내용은 전혀 다른 허황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은 “중용”으로부터 이루어진다고들 말한다. 이 “중용”은 흔히들 받아들이는 동양의 덕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덕과는 많이 다르듯, 흔히들 알고 있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중립을 지킨다는 내용의 중용과는 역시 많은 차이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은 산술적 평균, 외줄타기를 잘하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쉽게 말해서 중용이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적절하게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상황에 대한 인지가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판단과 결정을 해야 할 때, 무조건적으로 정해진 rule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동안 쌓아왔던 합리적인 지혜들을 하나씩 꺼내어 고도의 이성판단에 의해 어떤 것이 제일 적절한 판단과 결정이며 이 판단에 따라 어떤 시기에, 어떻게 실천해야 적절한 것인지 고찰을 하는 것이 바로 중용이다. 이러한 중용에 대한 좋은 문구가 있어서 인용해본다.
명예와 불명예에 관해 말하면, 그 중용은 긍지요, 그 과도는 이른바 허영이요, 그 부족은 비굴이다. 노여움에 관해 말하면, 그 중용은 온화요, 그 과도는 성급함이며, 그 부족은 성질 없음이다. 진리의 중용은 진실이요, 그 과도는 허풍이며, 그 부족은 거짓 겸손이다. 돈을 주고받는 일에서 중용은 너그러움이며, 그 부족은 인색함이고 그 과도는 방탕이다.
그러나 모든 행위에 대한 중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악의, 질투, 살인 등에는 중용이란 없으며, 그러한 행위를 함은 무조건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또한 절제와 용기는 그에 대한 극단이 곧 중용이므로, 그 자체가 중용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중용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중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극단적으로도 나갈 수 있는 그러한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한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에 대한 정리를 가지고 두 가지 예를 들어볼 수 있다. 만일 어린 아이가 납치된 어머니를 찾기 위해 무작정 길을 나선다면? 혹은 어떤 대학생이 자신이 한 선행에 대해 칭찬하는 것을 뿌듯해하고 싶지만 남들이 보기에 거만해 보일까봐 심하리만치 자신을 낮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