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 텔레스 이론의 선정이유
칸트와 공리주의,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이론 중 가장 나의 의견에 일치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의 시작인 ‘인간의 행위는 ‘행복’이라는 궁극적 목적이 있다‘는(목적론적 윤리학) 것이 나의 의견과 일맥하기 때문이였다. 또한 나는 평소에 보통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부’와 ‘명예’같은 것이 인생을 행복으로 이끌어 줄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현재의 이성적인 삶의 방식에서 행복을 찾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나의 의견과 유사하다고 생각하였다.
교수님이 6단계라고 하셨던 칸트의 윤리학은 나에게는 너무 난해한 부분이 많았다. 게다가 목적이 없는(수단이 되지 않는) 행위의 실천이라는 것을 실제 나의 경험에서 흔하게 발견해 낼 수가 없었기에 공감할 수도 없었다. 또한 공리주의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은 실생활에서도 번번히 일어나는 다수의 행복이라는 포장에 가리워진 소수의 희생을 당연시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와는 제일 반대되는 이론 이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의 개관
인간적 행위의 목적론적 접근
인간의 행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은 그런 행위를 하게 한 목적이 무엇인지 밝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인간적 행위의 이러한 목적 지향성으로부터 출발한다. 하나의 행위를 설명하는 목적에 대해 다시 그 목적을 정당화하는 상위의 목표를 물을 수 있다. 인간 행위를 수단과 목적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행위의 목적은 동시에 다른 보다 상위의 목적을 위한 수단일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하는 고등학생의 행위는 ‘수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설명될 수도 있지만 수능시험에서의 좋은 성적이라는 목적은 다시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한’ 목적에 대해서는 수단이라는 말이다. 물론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가는 것 자체는 다시 다른 것, 예를 들어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수단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좋은 직장을 얻는 것의 목적을 다시 묻고, 대답으로 주어진 것에 대해 다시 그 목적을 묻는다면 어떻게 될까? 보다 상위의 목적에 대한 질문과 대답은 무한히 계속될 것인가 아니면 어느 순간 더 이상의 목적을 얘기할 수 없는 곳에 이를 것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질문과 대답이 무한히 간다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일, 우리의 욕구 자체가 공허하고 쓸 데 없는 것이 된다고 하면서 어디선가는 더 이상 상위의 목적을 얘기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른다고 말한다. 앞에서 들었던 예를 계속 쓰자면, 안정된 직장을 얻는 것은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거나 ‘인간다운 삶’ 혹은 ‘보람있는 삶’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며 무엇 때문에 혹은 무슨 목적으로 ‘인간다운 삶’이나 ‘보람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상위의 목적을 얘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인간다운 삶’이나 ‘보람있는 삶’은 더 이상 다른 것의 수단이지 않으면서 오직 목적으로만 주어지는 것이 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목적을 ‘궁극목적’이라 부른다.
궁극적 목적으로서의 행복의 정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궁극목적은 행복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존의 통념과 철학적 논변을 검토하면서 행복의 토대가 되는 의미를 확보한 후 인간의 고유한 기능을 통해 행복을 정의하였다.
어떤 목수를 보고 좋은 목수라고 하는 이유는 그가 목수로서의 일을 잘 해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그 분야에서 ‘좋은’ 혹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얘기할 경우 기준이 되는 것은 바로 그 기능 내지 해야 할 행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인간으로서 갖는 기능을 물음으로써 ‘훌륭한 인간’ 혹은 ‘좋은 인간’을 얘기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찾고자 한다. 인간의 기능은 인간에게만 고유한 것, 혹은 인간만이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결국 영혼의 이성적 부분에 의해서 규정되는 삶이다. 다시 말하여 인간의 고유한 기능은 영혼 자체가 소유하고 있는 이성을 표현하거나 또는 이성에 따르기 위하여 이성을 필요로 하는 영혼의 활동 즉 이성 능력을 현실화하는 삶이다. 좋은 혹은 훌륭한 목수가 목수 일을 잘 하는 사람이듯이 훌륭한 인간도 인간의 고유한 기능인 이성적 삶을 잘 살아 내는 사람이다. 주어진 기능 발휘의 기회가 오면 언제나 잘 발휘할 수 있는 영혼의 품성상태가 곧 덕 이므로 덕은 자신 속에 ‘잘함’ 혹은 탁월성의 계기를 함축한다. 인간 고유의 기능을 어쩌다 한번 탁월하게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만 주어지면 언제든지 탁월하게 발휘할 품성상태에 따라 발휘하는 것, 그것이 바로 덕에 따른 활동이다. 행복은 인간 영혼의 덕의 실천에 따라 얻을 수 있다. 즉 행복은 인간 고유의 기능을 발휘하되, 발휘의 기회가 오면 언제든지 잘 발휘할 수 있을 품성상태에 따라 얻을 수 있다.
덕의 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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