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고전주의
( 고전주의 )
고전주의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서 그 시대의 배경을 알아보면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꼬르네유 다음 시대에는 모든 것을 더욱 화려하게 꾸미려는 욕구가 다시 일기 시작하고, 예술관 전체에 더 자유롭고 더 감각주의적인 바로끄적 경향들이 득세하게 되면서 궁정예술에서의 고전주의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고전주의적 경향과 바로끄적 경향의 기이한 병력과 혼합이 이루어지고 이 결과 그 자체가 하나의 모순이라고 할 수 있는 바로끄 고전주의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1750년경, 당시 예술의 지배적 경향에 대해 사회의 진보적 세력들이 지금
까지의 어떠한 고전주의보다도 더 철저하게 형식의 압축, 직선적인 것과 구성적 의미를 갖는 것들을 추구하는 신고전주의가 나타난다.
즉, 이시대의 고전주의 더 전형적인것과 규범적인 것을 강조하였으며 어떠한 고전주의도 이 고전주의만큼 명백한 성격을 띠지는 못했다. 엄격한 계획적 성격과 로꼬꼬의 해체를 겨냥한 파괴적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 그 이유라 할 수 있다.
새로운 고전주의는 결코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고전주의에 가까운 예술관과 이에 상반되는 예술관의 양극 사이에서 발전이 이루어져왔다. 그리고 모든 변화는 이 두 경향 중 어느 하나와 결부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두 가지 유형 사이에 원리적인 차이는 없다.
로꼬꼬 고전주의는 18세기 중엽부터 7월 혁명까지의 기간에 걸쳐 나타난다. 이 시기의 고전주의는 하나의 통일된 운동은 아니 였지만 명백히 구분 지을 수 있는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이루어지는 발전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1750~80년 동안에는 혼합된 양식의 성격으로 인해 ‘로꼬꼬 고전주의’라고 불렀다. 예를 들자면, 당시의 건축은 로꼬꼬풍의 실내장식과 고전주의적인 벽면장식을 서로 결합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루이 16세 시대의 가장 중요한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지 하나의 저류를 이루었을 뿐이다. 이러한 현상을 통해 우리는 이 시대의 우유 부단성과 무능력을 확인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끄 고전주의와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끄 고전주의는 완전히 통일적이지 않더라도 하나의 단일한 양식으로 해소하고자 노력했지만 로꼬꼬 고전주의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러한 절충주의는 상이한 사회계층의 외견상으로는 서로 뒤섞여 함께 협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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