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vol 3의 서평
난 란 책을 접하고 나서 ‘이렇게 어려운 책을 누가 읽을까?’란 생각부터 들었다. 나에겐 아르놀트 하우저라는 작가의 이름부터 낯설었고 다루고 있는 문학과 예술,사회사라는 분야 역시 관심분야도 아니였을뿐만 아니라 처음 이 책을 읽기위해 펼쳤을 때 생소한 단어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구입하기 위해 여러곳의 인터넷 서점과 이곳저곳의 사이트들을 돌아본 결과 학생들의 필독서라는 것을 알았고, 이 책은 단순하게 지식전달 매체로서가 아닌 유럽 지식인들에게 신선한 감동과 충격을 가했다고 하니 나에게 이 책을 읽도록하는 관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아르놀트 하우저는 책에서 심도 있게 해박한 지식과 일관된 논조로서 서양문학과 문화뿐만 아니라 예술 전반에 대해 전달하고 있다. 나 자신 역시 이 생소한 분야를 다룬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다른 사람들에겐 이미 익숙해져있는 분야일지는 모르겠지만.......서양문화와 예술, 그리고 사회사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또한 나의 무지함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에서는 ‘로꼬꼬와 새로운 예술의 태동’이란 큰 제목하에 궁정예술의 해체와 새로운 독자와 관객이라는 소제목으로 분류하여 각 시대와 그 시대에서의 예술의 주류, 또 그 시대를 이끌어나간 주류들의 예술에 대한 시각과 경향을 논리적으로 전개 시키고 있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논점을 살펴보면 ‘18세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아직 바로끄적 화려함과 과장됨을 계승하고 있고 심지어 그런면의 완성을 이룩하고 있으면서도 17세기가 장려의 취미를 끝까지 자명하고 당연하다고 보았던 태도는 이미 낯선 것이 된다. 그리하여 이 시대의 작품들은 최상류층을 다루는 경우에도 웅대하고 영웅적 기풍이 결여되어 있었다. 바로끄와 로꼬꼬의 전통에 대한 공격은 두 개의 상이한 방향에서 이루어 지는데 두 경우 모두 궁정적 취미와 대립되는 동일 예술이념에 기초를 둔다. 하지만, 18세기 말이되면 유럽에 대표적 예술은 오직 부르즈와적인 방향으로 흐른다. 시민계급이 물질적으로 대등하고 실제적인 면에서 우월한데 자극받아 귀족계급은 혈통이 다르고 내력이 상이함을 강조하였지만 두 계급의 외적인 상황이 날이갈수록 비슷해짐에 따라 귀족에 대한 부르즈와지측의 적대심은 더욱 격렬해졌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르네쌍스시대 이후 18세기 전반에 걸친 궁정예술의 해체와 이로인해 새로이 유럽을 대표하게 되는 부르즈와적인 방향, 시민예술의 발전은 절대주의로서의 권력에 대한 자의식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었던 예술 양식으로서의 바로끄 고전주의가 해체되면서 시작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목가문학의 소개와 베르겔리우스의 목가문학, 새롭게 나타난 목가문학, 회화나 소설에서 나타나는 경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중반부로 들어서면서 로꼬꼬의 개념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바로끄는 왕실예술이였으나 로꼬꼬는 왕실예술이 아니라 귀족과 대부르즈와지의 예술이다. 섭정시대의 예술과는 대조적으로 로꼬꼬는 사치스럽고 우아한 성격 및 유희적이고 변덕스러운 매력을 그러나 동시에 부드럽고 내면적인 성격을 지닌다. 로꼬꼬는 바로끄가 묵직하고 조각적이고 사실적 공간성을 지닌 양식이라면 날카롭고 미묘하고 민감한 하나의 능란한 장식 예술이다. 로꼬꼬는 후기 바로끄의 고전주의를 해체함으로서, 그리고 그 회화적 양식과 그림답다는 데 대한 민감성 및 인상주의적 기교에 의하여 시민계급예술의 정서를 표현하는 데 르네쌍스나 바로끄의 표현 형식보다 훨씬 더 적합한 하나의 수단을 창조함으로써 그 스스로 이 새로운 양자택일을 준비한다. 바로 이 수단의 표현능력 자체가 감상주의나 비합리주의와 원래 극히 첨예한 모순관계에 있는 로꼬꼬의 해체를 유도하게 된다. 많게든 적게든 자동적으로 발전해가는 수단과 본래의 목표 사이의 이러한 변증법적 관계를 빼놓고는 로꼬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동 시대의 사회적 대립관계에 상응하는 이러한 대립의 산물로 로꼬꼬를 관찰할 때 비로소 그 복합적 성격을 정당하게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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