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 진정한 자유를 누리다(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읽기와 삶읽기을 읽고)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읽기와 삶읽기을 읽고’
대학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숫자를 매우 싫어하는 내가 억지로라도 책상에 앉아 숫자들을 끄적이고 수학 문제를 풀고, 대학교 가는 것과 이러한 공부가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길래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공부 공부 하는걸까 불평하면서도 꾹참고 펜을 잡았던 이유는 대학이라는 것이 풍기고 있는 ‘자유’라는 해방감의 향기 때문이었다. ‘소개팅을 하고 남자친구를 사귈 수 있을것이다? 대학에 가면 부모님과 선생님 잔소리에서 해방이다?’ 하는 그런 의미에서의 자유라기 보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만을 선택하여 내 나름대로의 방법을 가지고 문제의식을 가져보며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이제는 입시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비로소 주체적인 어른이 될 수 있다는 환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학은 그렇게 내 생각만큼 낭만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분명 대학이라는 곳은 낭만적인 공간이나 그 곳에 속한 나 자신이 그 낭만을 누릴 줄 모르고 있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서도 자주 공감하게 된다. "대학와서 이러고 있을거면 도대체 왜 그렇게 고등학교때 죽자 살자 공부랑 씨름했던 걸까?“ 하며 대학생활에 회의를 느끼곤 한다.
애초에 대학이라는 공간이 가진 ‘자유’라는 것에 대해 잘못된 정의를 내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나도 그런 생각을 가졌었다. 고등학교때 정말 집에 일찍 가고 싶은데도 저녁 늦게까지 야자를 해야 할때 “진짜 수능만 끝나봐라 대학가서 실컷 놀테다”라고 이를 악물었었다. 하지만 대학이 품은 ‘자유’는 고등학교때 보다도 더 열심히 학문에 달려들어야 하고 자신의 행동에 자신이 책임을 물어야 하는 진정한 어른으로써의 도약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나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이 대학이 가진 의미를 잘못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지식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게 하는 주입식 교육의 폐해 이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어른인데 머릿속은 아직도 주입시켜주는 지식을 습득할줄이나 알지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활용할 수 없는 어린 아이와도 같다. 도대체 나와 같이 캠퍼스를 거닐고 있는 일만명의 학생들 가운데 자기 스스로 주체적인 의식을 가지고 자기 자신만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지닌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안타깝다. 이 현실이, 그리고 나 자신이.
그런 의미에서 내가 오늘 읽은 이 책은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한다. 제대로 된 말을 갖지 못하고 헛도는 말을 하는 나 자신을 꾸짖는다. 솔직히 많이 부끄럽다. 이 책에서 나오는 25명의 학생들이 각자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며 토론하는 것을 보니 더더욱 그렇다. 86년도의 대학생이나 2011년의 대학생인 나 자신이나 분명 나이는 20대의 청춘의 시기일텐데 어떻게 물질적인 요건이나 환경이나 더 우월한 것을 누리면서 어찌나 사고는 뒤처지는지 책을 읽는 내내 붉어진 얼굴을 숨길 수가 없었다.
잠시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왜 우리는 주체적인 사고를 갖지 못하는가? 86년에서 2011년 지금 현재까지,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 사회에는 어떠한 일들이 생기고 있나? 오늘을 살고있는 우리들이 과거속의 대학생들에 비해 생각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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