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불편해도 괜찮아
누구나 아는 인권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권리이다. 온갖 사회적인 문제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인권의 확대 내지 축소를 알게 된다. 그래서 한 사회의 민주화가 어떠한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인권은 누구나 주의를 기울일 만한 주제이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러나 제대로 알지 못했던 인권의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인권이라는 것이 그저 한 번 보고 마는 일회용 영화는 아닐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이 책의 저자는 또 다른 문화를 읽어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불편함’이다.
유년시절 미술 시간에 사람을 그릴 때에는 항상 살색 크레파스를 사용했다. 일본에서 유래된 살색을 인간의 피부색을 뜻하는 것으로 당연시 여기며 사용해왔다. 살색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인종 차별을 바로 떠올리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는 어느 순간 잠재적으로 흑인들을 우리와 다른 종으로 생각하면서 우월감을 느껴왔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리는 피부색뿐만 아니라 신체의 상태, 가치관, 취향, 재산, 학벌, 나이 등 많은 부분에 있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거나 무시하고는 한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이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선택이 소수의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것일 때 그러한 느낌은 더욱 강해진다. 그것을 이 책에서는 ‘불편함’이라고 표현한다. 즉, 자신이 다른 사람을 볼 때 우리는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불편함은 불쾌함으로 이어지고 어느 순간 차별과 거부로 나타난다. 나아가 이것은 집단의 느낌이 되어 소수자들을 탄압하기에 이른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차별을 하고 있고 그것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도 모른 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성소수자 인권, 여성과 폭력, 장애인 인권 등 여러 인권들 중에서도 가장 공감이 되고 이해가 가능했던 부분은 ‘청소년 인권’이다. 아무래도 성소수자 인권 같은 경우에는 내 주변에 동성애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있다 해도 그들의 사랑을 논할 자격이 나에게 있을까 하는 생각에 관심을 덜 가지는 부분도 있는 듯하다. 물론 장애인, 종교, 인종차별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세상이 있고, 내가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서 그들 존재 자체를 투명인간 취급을 하자는 취지는 아니다. 그저 그들만의 삶을 존중해주자라는 의견이다. 그런데 왜 청소년 인권 부분에서는 유독 관심이 갔을까? 곧 23살을 바라보는 나는 청소년 시기가 끝난 지 약 3년 밖에 되지 않아 와 닿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 인권’ 목차에는 여러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지랄 총량의 법칙]이었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지랄 총량의 법칙은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그 정해진 양을 사춘기에 다 써버리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늦바람이 나서 그 양을 다 쓰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생각해보면 나 같은 경우에는 사춘기 시절의 ‘지랄’은 딱히 크게는 없었던 것 같다. 이유를 묻는다면, 나의 부모님이 글쓴이 딸의 부모님(즉 작가님)처럼 스펙이 좋은 편도 아니었고(심리적으로 억압받는 것은 없었다는 얘기. 예를 들면 부모님이 직위가 높으시게 되면 상대적으로 자식에게도 기대치가 커져서 지나친 부담감이 심어지는 것.), 평소 내 행실을 가지고 트집 잡는 부분이 있지도 않았다. 특히나 학업에 있어서 이래라 저래라 논하시던 분들이 아니기에 사춘기 시절의 ‘지랄’은 생각보다 표출되지 않은 것 같다. 곰곰이 나의 청소년 시절을 지나 현재까지 되돌아봤을 때, 일생 써야할 나의 ‘지랄’의 사용은 지금 현재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 시절 한 번씩 어머니께서 성적이 좋은 친구를 얘기하며 ‘공부 잘하는 친구가 옆에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드노?’라고 살짝 돌려서 내게 질문을 하시면 ‘걔는 걔고 나는 나지, 무슨 생각을 해야 되나?’라고 아무렇지 않게 넘기곤 하였다. 그런데 이랬던 내가 대학에 와서는 왠지 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공부의 길은 내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과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자’라는 생각이었기에 비교를 하건, 잔소리를 한다 해도 덤덤하였다. 하지만 청소년 시절 꿈꾸었던 공부를 대학에 들어가서 비로소 시작하게 되어 열정도 넘치고 여러모로 인정받고 싶었던 나에게 있어서 부모님의 기대치(고등학교 시절에 비해 학업성적이 좋았던 점), 부모님과 선배들을 통틀어 친한 친구와의 성적 및 능률 비교는 나를 자극시키고 말았다. 별거 아닌 일에도 짜증부터 나오고 예전 같으면 너그러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마저도 안 좋게 돌려 생각하는 점이 나의 ‘지랄’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래서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앞으로 어떻게 하면 나의 ‘지랄’을 극복하고 원래의 평온한 상태의 나로 돌아올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
전반적으로 느낌을 요약하자면 작가님의 영화 및 드라마 지식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의 시작은 나에게 흥미로움을 불러 일으켰다. 아무래도 영화에 있어서는 아직 나의 시야가 좁은 편이라 많은 영화를 접해보지 못해서 메모를 하고 ‘나중에 찾아 봐야겠다.’라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곤 했다. 그렇게 독서가 진행됨도 잠시 너무 잦은 예시의 나열은 내용 집중에 있어서 방해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였다. 작가는 과연 독자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라는 의구심이 생기기도 하고, 이제는 한마디 한마디가 작가의 의견인지 영화의 의견인지 분간이 안 되기도 하였다. 적당한 예시로 진행되었다면 신뢰 높은 책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