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 고독한 군중을 읽고

 1  [독서감상문] 고독한 군중을 읽고-1
 2  [독서감상문] 고독한 군중을 읽고-2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독서감상문] 고독한 군중을 읽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고독한 군중을 읽고
고독한 군중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 ‘고독하다’란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하다는 뜻이고, ‘군중’이란 수많은 사람을 뜻한다. 이는 즉 수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왜 외로움을 느낄까? 이 이유를 리스먼은 현대의 산업화된 대중사회의 구조적 메커니즘과 이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의 행위유형 연구를 통해 답을 할 것이다.
리스먼의 눈에 비친 현대사회는 더 이상 경쟁과 업적으로 특징지어진 자유분방한 경쟁사회가 아니며, 인간에 대한 개인주의적 신념은 붕괴되었고 권력은 집중화된 채 대중조작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사회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리스먼의 눈에만 비친 사회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현대사회가 다원화된 사회라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사회는 산업사회와 다를 바 없는 획일화된 사회이다. 개성사회라고 하지만 여전히 유행에 약하고 유행에 뒤따라가기 바쁜 이 현대사회를 과연 다원화된 사회라 할 수 있을까?
전통사회에서부터 현대사회까지 사회구조는 수차례 변해왔다. 리스먼은 이러한 사회구조에 따라 인간의 행위 유형을 사회적 성격이라는 개념을 통해 전통지향형, 내적지향형, 타인지향형으로 구분하여 해석한다. 전통지향적에 의존하는 사회에서의 성격구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통사회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중요시하고 이러한 전통과 과거를 행위모형의 주요 기준으로 삼았다. 그래서 사회질서나 행동양식이 안정되어 있고 개인의 활동은 전통, 일상적 관습, 종교 등에 순응한다. 그 후에는 의학의 진보 등의 이유로 사망률이 저하되고 급속하게 인구증가가 일어나는 과도기적 인구증가의 사회에서는 가족에 의해 일찍부터 학습된 내면적 도덕과 가치관을 기준으로 하는 내적지향적인 사회적 성격이 우세했다. 이러한 내적지향적에 의존하는 사회에서 사회구성원들은 사회화 학습에 의해 동조성이 보증되는 유형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리스먼은 현대에 들어서는 이전까지의 사회적 전통, 가정이 맡아오던 가치관과 정체성의 확립을 주변의 또래집단이 대신하게 되었다고 판단했다. 현대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 및 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에 의해 그 동조성이 보증되는 타인지향적인 사회적 성격이 지배적이다. 이렇게 전통지향사회, 내적지향사회, 타인지향사회로 옮겨오면서 사회구성원들의 사회화 과정과 학습 매개체의 차이가 사회적 성격의 형성요인이 되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론해볼 수 있다.
타자지향적이라는 말은 좋은 의미처럼 들리기도 한다.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이기 보단 남의 시선을 신경 씀으로써 조화롭게 살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리스먼은 타자지향적인 사회가 왜 문제가 있다고 보았을까? 타자지향적 인간은 자아의 명백한 핵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고도산업화에 따르는 대중사회에서 타자들로부터 격리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타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가장 심각한 불안이 된다. 결국 개성이 보장되었다고 주장하는 이 사회 속에서 만약 일반적인 사람들과의 차이를 보인다면 그들은 격리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겉보기만의 사회성의 그늘에 불안과 고독감을 지니고 있는 고독한 군중‘이 되어버렸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가 있다. 1970년대부터 일본에서 나타나기 시작해, 1990년대 중반 은둔형 외톨이들이 나타나면서 사회문제로 떠오른 용어인 ‘히키코모리’가 그 예이다.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히키코모리를 학자들은 핵가족화로 인한 이웃·친척들과의 단절,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한 급속한 사회변화, 학력 지상주의에 따른 압박감,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취업하지 못하는 데 따르는 심리적 부담감 등 여러 요인을 원인으로 지적한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단지 급격한 사회생활을 쫓아가지 못해 ‘아노미’를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타자들의 요구하는 눈에 충족되지 못해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껴 사회로부터 자기 자신을 격리시켜버렸다. 이러한 열등감이라는 것은 남들은 사회의 일반적 요구사항에 충족되었는데 나만 충족되지 못해 다르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왔기 때문에 그들은 남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혼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만약 사회가 타자지향적인 성격을 띠지 않았다면 남들과는 다른 것은 절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남들의 눈을 신경쓰다보니 스스로가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은 1950년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리스먼이 비판하려던 미국 사회의 모습이 현재로 와서도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습을 나로부터도 찾을 수가 있었다. 나는 옷을 사러 갈 때도 가장 무난하면서도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입는 옷을 위주로 샀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다르다’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단지 소비생활을 할 때뿐만 아니라 내 장래에도 영향을 미친다. 내 미래를 위해 굳이 위험한 도전을 하기 보다는 남들이 말하는 안정적이고 편안한 직장을 찾으려고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완성된 나는 과연 나 자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완성된 나는 쇼윈도에 진열된 마네킹이다. 누군가 입혀놓은 옷을 입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놓여있을 뿐이다. 누군가를 위한 ‘나’가 아닌 나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이 책에서 리스먼은 적응과 자율에 대해서 언급한다. 지금까지 위에서 기술한 전통지향형, 내부지향형, 타인지향형은 ‘적응형’으로써 인구곡선의 특정한 단계에서 사회나 사회계급의 요구에 응답하는 성격구조를 지닌 사람들이다. 반면, 적응형의 성격패턴과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을 ‘자율형’이라고 하는 데, 이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사회의 행동규범에 동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순응여부를 자유롭게 선택한다. 만약 내가 자율형인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보다 나 자신이 되는 데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엄연히 다른 의미이다. 나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틀리다는 것이 아니다. 아직까지 모두가 “예”라고 할 때 혼자만 “아니요”라고 할 용기는 없지만 틀린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나는 더 이상 고독한 군중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