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 어른은 겁이 많다
상처받지 않으려 애쓸 필요 없다.
우리는 모두 라이너스다.
세상엔 무서운 것들이 너무 많다. 나는 피가 철철 넘치는 영화를 정말 못 본다. 소위 고어라고 하는 피가 넘치고 내장이 튀어나오고 그런 이야기들을 듣는 것도 정말 못해서 친구들이 장난친다고 내게 톱이 어쩌고저쩌고 그런 이야기만 해도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하지 말라고 기겁하곤 했다. 또 놀이기구도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사람들은 아찔한 기분을 느끼기 위해 탄다고 하지만 나는 그 아찔한 기분이 너무 싫어서 버스 맨 뒷자리에서 좀 빠른 속도로 과속방지턱을 지나 덜컹거릴 때 느껴지는 그 아찔한 기분도 질색할 정도다. 이것저것 말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만 아무튼 이건 내가 무서워하는 것이다. 18살의 마진원이나 23살의 마진원이 똑같이 무서워하는 것.
23살의 어른이 되고 보니 여전히 무서워하는 것들은 많지만 그 무서운 것들에게 공통점이 있었다. 내가 다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왜 놀이기구가 무서운지 나는 안다. 내가 타봤으니까. 타고 나서 펑펑 울고 있는 내게 고작 저게 무섭다고 비웃는 작은아버지를 알고 있다. 나는 거기에 상처를 받았던 거다. 그래, 그 상처다. 그 상처가 내가 무서워하는 것들을 만들어 냈다. 정말 많은 용기를 내서 내가 무서워하는 것에 맞섰는데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고작이라는 말로 내게 상처를 낼까봐 무서워서 지레 겁을 먹고 ‘난 원래 그런 거 싫어해.’, ‘ 해봤는데 별로더라고.’ 등과 같은 변명을 대며 뒤로 쏙 숨었다. 다들 그러지만 그러지 않는 척 말이다.
그런 우리에게 ‘어른은 겁이 많다’는 색다른 해결방안을 제시해준다. 변명 뒤에 숨어서 여린 마음을 감추고 얼기설기 만든 조잡한 방패로 내 마음 한줌이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주는 상처에 다치지 않도록 지키려고 애쓰는 나를 살살 달랜다. 속마음 한 자락만 줘봐 창피하겠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말하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 길고양이를 길들이듯 지레 겁먹은 내가 할퀴어도 핏방울 송송 맺힌 손을 여전히 내밀어 끝내는 무릎 위에 올라 고롱고롱 울며 이래서 상처받았고 저래서 상처받았고 어른이 되었는데도 저 사람이 아직 밉고 그 사람이 아직 그립고 술술 털어놓게 만든다.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괜히 쑥스럽고 창피해서 저 멀리 도망가게 되지만 그래도 다시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나 말고도 다른 사람도 그렇게 사는 건지 묻게 된다. 참 우스운 일이다. 사람들에게서 받는 상처가 무섭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사는지 그게 그렇게 궁금할까.
피너츠의 라이너스가 담요가 없어지면 불안해하는 것처럼 ‘어른이’들은 상처받기를 두려워한다. 어딜 가든 담요를 끼고 살아야하는 라이너스 같은 현대의 어른이들은 변명 하나씩은 끼고 사람들 틈바구니를 살아간다. 그 변명이 통하지 않으면 담요를 잃어버린 라이너스처럼 당황하게 되고 또 다른 변명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마음 속 깊이 숨겨둔 진심을 꺼냈을 때 상처받았던 사실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겁을 먹고 있다. 진심을 꺼내기 위해 우리는 수백 번 고민하고 혹시 하는 의심들을 미뤄두고 그 사람을 믿고 꺼냈을 마음인데 상대방은 그 긴 시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그 믿음이 부서지는 충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상처에는 공감하지 못한다.
자, 또 다른 해결책이다.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그리고 당연히 사람들은 다 상처를 받는다. 왜 상처를 주는 것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며 무심하게 넘기면서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엔 고작이라는 말로 한 번 더 상처를 줄까? 우리는 모두 여린 존재라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서로를 너무 몰아세우지 말고 남을 향해 너무 날을 세우지도 말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를 인지하고 거리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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