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 감상문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 독후감
예수님과 함께한 저녁식사를 읽기에 앞서 나는 전에 이 책을 읽은 기억이 있다 내가 예수님을 조금 더 깊이 생각하기 전에 어머니께서 이 책을 읽고 계셨는데 그때 나는 호기심에 책을 잠시 들여다보고 재미있게 생각하며 한번 진지하게 읽어볼까 하던, 하지만 이제까지 진지하게 읽어보지 않고 미루어 왔던 그 책을 이제야 진지하게 읽어본다.
이 책의 주인공인 닉 코민스키씨는 정말 전형적인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께 떠밀려 교회를 나간 그 이유로 웬만한 교회의 체계나 성경이야기 등을 조금은 알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초대장을 보고 ‘전도 행사’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전도 행사’ 같은 것에 대해서 질려한다. 하지만 그동안 잘 피해오던 교회들과의 접촉을 예외로, 이번 초대에 응했던 것은 단지, 회사동료의 장난일 것이다, 라는 이유가 아니라 분명 그의 내면 깊숙이 존재하고 있는 한 가지, 예수님 즉, 하나님을 만나고자하는 그의 마음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장난처럼 그 초대에 응했던 것은 아닐까?
예수님과의 첫 대면을 한 닉은 예수님을 샅샅이 살피며 불편해하고 어색해 한다, 눈앞에 계신분이 예수님이라 인정하지 않고 포도주를 물로 바꿔 보라 하는 주문에 포도주 잔을 비우고 물로 채우라는 예수님의 반응에 화를 내고 이내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일관하게 된다. 이후 계속된 그의 비아냥거리는 태도와 불신에 예수님은 한 가지 제안을 하시고 닉은 그에 순응하고 대화를 다시 시작한다.
대화가 시작되고 난후에 내가 그렇게 다른 종교에 믿음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아주 기초적인 지식은 알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시는 종교의 허황되고 모순된 이야기들은 이해하고 넘길 수 있었고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나의 눈에, 내 머릿속에, 마음에 들어온 말은 ‘인간의 가장 깊은 욕망’, ‘인간의 가장 깊고도 큰 욕망은 사랑받기 원하는 것’이였다 평소라면 그렇게 마음에 담아 두지는 않았을 말 이였지만 읽었을 땐 실감했다 이전의 예수님이 말하는 다른 종교 다른 어떠한 종교도 인간의 원초적이며 깊고도 큰 욕망인 사랑받기 원하는 것을 채워주는 종교는 나의 생각과 책에도 쓰여 있듯이 하나님 외에는 그 어느 곳 에서도 찾을 수 없고 느낄 수 없고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정을 사랑을 받기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다. “하나 물어보죠. 사라가 일곱 살 때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 벌로 저시를 몇 개나 씻어야 다시 아빠의 품에 안길 수 있을까요?”···“그런 질문이 어딨습니까? 그 아인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딸이니까.” 이 대화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보다 내가 느낀 것은 ‘할일이 없다, 필요가 없다.’ 라는 느낌이 좀 더 강하게 느껴졌다 비슷한 말이지만 내가 부모의 사랑을 받기위해 해야 할일은, 내가 부모님의 사랑을 받기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부모님이 나를 사랑해 주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이 책에서 말하는 ‘히틀러와 마더 테레사수녀님’의 이야기가 있던 곳 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아 몇 번이고 읽은 것 같다 여전히 확신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완벽 그자체이시기 때문에 완벽하게 공정한 것 ‘완전한 정의’ 이것이 바로 완벽한 하나님에 비추어 우리가 어떠한 선함과 공적을 쌓아도 완벽한 것에서는 너무나도 모자라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인간이기 때문에 죄로 인해 천국을 갈수가 없다 왜냐하면 ‘완벽하신 하나님의 공정, 정의’ 때문에 하지만 우리와의 영원한 단절대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해서 벌을 받아 주셨다 아마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때에 “신이 뭐 하러 그러겠소?” “하나 물어볼게요. 사라가 열일곱 살인데, 질 나쁜 무리들과 잘못 어울려 마약에 빠지게 되었다고 해봐요. 자,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사라는 누군가를 살해하고,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딸 대신 그 벌을 받으실 건가요?” “네, 대신 받을 겁니다.” 이러한 대화가 닉과 예수님사이에서 오고 간다 그러곤 예수님께선 “당신이 딸을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우리가 어떤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 되었을 때 가장 슬퍼하고 아파하실 분은 하나님이 아니실까? 그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받아주신 것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가 없이 그분의 사랑을 받으면 되는 것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 그분을 믿는 것 이다.
이 책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부분 중 가장 나에게 계속 생각을 하게 만드는 부분은 닉의 아버지에 대한 상처로 예수님과 대화하던 부분이다. “때로······ 사람들은 깊은 고통을 겪은 후에야 하나님의 필요를 절감합니다.” “···그런 상처가 없었다면 지금 여기 앉아 나와 얘기하고 있지 않을 겁니다.” 이 부분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공감 때문이다. 나 또한 닉과 비슷한 상처, 고통을 갖고 있다 그것도 아버지에 관한 나는 정말 우리 가족을 사랑 한다 다른 사람들 모두 그렇지만 나에게는 더욱 각별하고, 없어서는 안 되는 것 그것이 가족이다. 우리 집은 친척 에서부터 우리 가족까지 모두 독실한 크리스천 집안이며 때문에 정말 가장 큰 축복이라는, 작지만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왔다 하지만 가족들과 친척들 모두 독실한데다가 모태신앙인 나로서는 교회는 당연한 것이고 그저 맹목적으로 믿어왔으며 최근까지 ‘나의 하나님이란 어떤 분이신가?’라는 생각이나 마음속 깊이 그분을 찾는다던지. 나의 신앙과 믿음은 갓 태어난 어린아이 같아서 최근까지 그분에 대한 생각과 그분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마도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를 찾지 않았던 것 아닐까 나의 생각처럼 하나님도 역시 그렇게 생각 하신 것 같다. 그분께선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를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먼 이국땅으로 보내셨고 그다음은 나의 친구들 보다 도 마음이 잘 맞는 친동생이 고등학교 2학년 때 보내졌다. 그 때, 바로 그 때서야 나는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그분께 원망어린 눈물의 기도를 드렸고, 그 원망 섞인 기도를 들으시고 내게 주신 말씀은 내가 너에게 그러한 시련을 준 것은 어떠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며 빨리 깨닫기를 바란다. 라는 말씀을 어떠한 설교를 통하여 듣게 되었다. 비록 닉의 고통에 비하면 나의 아버지에 대한 고통은 견주어 볼 수도 없지만···. 그 설교를 듣고 난후의 생각은 ‘부친의 부재에도 나는 이렇게 슬퍼하는데 나의 근본이신 하나님 아버지와 단절 되어있는 나로서는 정말로 그 슬픔은 아무것도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과연 이러한(부친의 부재) 고통 없이 그분을 찾았을까?, 원망 섞인 기도라도 그분께 진심으로 들였을까? 나의 생각엔 ‘아닐 것’이다 그만큼 나에게는 큰 고통과 시련이 그분과의 대화를 유도하고 그분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들을 수 있고 그분에 대해 깊이 알아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도 처음엔 닉씨 처럼 그분과의 대화를 피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에 몇 번이라도 그분을 알아가는 나의 마음은 레스토랑을 나오고 있는 닉의 마음과도 같다 ‘떠나기 싫어질 줄이야’처럼 난 그분과의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 그동안 못해왔던 대화를 실컷 하며 항상 그분에 대한 생각과 믿음을 키워나갈 것이다. 닉이 마지막에 펼친 성경책의 구절에 있는 요한계시록 3:20 처럼 그분을 나의 안에 거하게 할 준비를 조금씩 해나가야 할 것 같다. 주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 하시는 것 그 같이 기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이 책을 읽고 그동안 정리 되어오지 않던 나의 마음과 생각들이 정리가 되었고 이런 적정한 시기에 이 책을 읽게 되어서 기쁘다. 좀 더 빨리 읽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지금에서라도 이 책을 진지하게 읽었다는 것, 나의 마음에 위로를 얻었다는 것들이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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