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론
과거에도 쾌락주의가 존재했다. ‘어, 그래. 맞아, 헬레니즘 시대에 에피쿠로스학파도 쾌락주의였는데 그러면 똑같은 건가?’ 그러나, 이와는 다르다. 왜? 최대다수이다. 가능한한 많은 숫자 아닌가? 최대다수니까. 이것은 우리가 모두 같이 있는 집단 사회를 뜻한다. 사회의 이익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점이 에피쿠로스와 다르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는 무엇이었던가? 그 당시는 전부 개인주의였다. 개인적 개인주의적 쾌락주의가 에피쿠로스의 입장이다. 어째서인가? 헬레니즘 시대에, 알렉산더가 죽었다.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내코가 석자였다. 언제 사회를 돌보겠는가? 이래서 공리주의와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는 쾌락주의라고 하는 점에서 똑같지만, 그러나 공리주의는 개인만이 아니고 사회의 이익도 챙긴다. 개인의 이익을 챙기는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하고는 이렇게 대립한다.
공리주의의 대표적인 사상가는 벤담과 밀을 들 수 있다.
1. 벤담의 사상
우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이 표현을 쓴 인물이 바로 누구냐 하면 벤담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표현이 벤담의 공리주의에만 해당이 되는가? 밀의 질적 공리주의에도 해당이 된다. 벤담은 뭐라고 설명했느냐 하면 그의 공리주의를 우리가 흔히 양적 공리주의라고 한다. 왜냐 하면 모든 쾌락은 질적으로 동일하다고 하였다. 쾌락은 한 종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질적으로 모두 동일하기 때문에 양적으로만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 쾌락을 양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은 쾌락을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쾌락을 계산하는 방법을 그는 제시를 한다. 그리고 그는 내적 제재와 외적 제재가 있을 때, 외적 제재를 강조한다. 외적 제재라는 게 무엇인가? 외부에서 가하는 행위. 도덕적 행위를 하지 않았을 때 신체적인 제재 아니면 도덕적인 제재, 종교적인 제재 또는 정치적인 제재 이런 외적 제재를 그는 강조했다는 것이다. 벤담은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놀랍게도 계산 기준을 만들었다. 이를 테면 강도, 세기이고, 지속성, 오래가는 것이고, 확실성, 생겨날 가능성이 높은 것, 접근성, 이른 시일 내에 얻을 수 있는 것. 생산성, 그것이 또 다른 쾌락을 낳는가. 순수성, 고통과 섞이지 않았는가. 파급범위,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쾌락을 주는가. 이런 7가지 기준을 내세운 사람, 그 이름 제레미 벤담이다. 문제는 무엇인가? 여기에서 벌써 드러난다. 이것은 너무 양만 밝히는 것이 문제 아닐까? 그런데 이러한 벤담의 이 철학을 뭐 돼지의 철학이라고 비난한 인물이 있다.
2. 밀의 사상
그게 바로 밀이다. 어떻게 이 양적인 것만을 강조하느냐는 것이다. 밀이 주장한 대표적인 말이 있다.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되는 것이 더 낫고, 만족스러운 바보가 되기보다는 불만족에 가득찬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낫다” 는 것. 쾌락에 어떻게 양적인 차이만 있을 수 있느냐? 질적인 차이도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보통의 상식과 감정을 가진 사람들은 보다 더 고상한 질적으로 고상한 쾌락을 추구해야 된다고 해서 우리는 그의 철학을 질적 공리주의 이렇게 부른다. 밀은 질적 공리주의자다. 어째서인가? 쾌락의 질적 차이를 강조한다.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상한 쾌락이 있고, 보다 저급한 쾌락이 있다는 것이다. 주로 저급한 쾌락이 뭘까? 육체적인 쾌락이 저급하다. 먹고 마시고 즐기고, 고상한 쾌락이라는 것은 주로 정신적인 쾌락 그리고 지속적인 쾌락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다 고상한 그런 쾌락을 추구해야 된다고 했다. 벤담이 외적 제재를 강조했다면 밀은 제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내적 제재라 하였다. 내 양심이 스스로 내가 도덕적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 “인간아 너 그렇게 살지마.“ 라고 제재하는 것, 이 양심의 제재를 보다 더 강조했다.
3. 공리주의의 한계
공리주의에서는 모든 행위와 결정은 그것의 공리(utility)에 의해, 즉 얼마나 좋은 결과를 낳는가 하는 유용성에 의해 판단된다. 공리주의의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1. 합리성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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