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도덕에 대한 판단 기준 중에서 하필이면 칸트를 고른 이유는 하나다. 그냥 끌려서 고른 것이다. 좀 자세하게 설명하면 공리주의나 흄과 같은 다른 도덕이론들은 왠지 모르게 세상과 타협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세상을 사는데 있어서 이론과 현실사이의 괴리 때문에 타협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나도 세상과 타협을 하고 지낸다. 그러나 적어도 도덕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이론과 현실의 타협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고 바람이다. 그래서 확고하면서도 절대적인 기준을 삼는 칸트철학이 나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그래서 나는 칸트를 택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난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칸트철학은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예외를 고려하지 않은 언제나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생각해야 한다.
◎관련이론
1)칸트의 일생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1724년에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80여년 뒤 그곳에서 사망했다. 부모님 모두 개신교 경건주의자들이어서, 종교적인 내면의 수행과 선행을 강조했다. 칸트는 평생 동안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매일 5시가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 일에 열중했고,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강의를 했으며, 9시부터 오후 1시까지는 주로 연구 시간으로 활용했다. 점심식사 때에는 손님들과 다양한 주제를 놓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그 후에는 산책을 했다. 저녁에는 다시 연구에 몰두하다가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칸트의 정확한 일과로 인해서 이웃 사람들은 그의 움직임을 보고 시계 바늘을 맞출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시계가 없어도 그 시간이 언제인지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일반사람과는 사뭇 다른 매우 계획적인 생활을 했기에 그는 세계철학사에 한 획을 긋는 업적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칸트가 죽었을 때는 이 위대한 인물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집으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칸트가 죽자 성대한 장례식이 치러졌는데, 시내의 모든 교회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종을 울렸고 수천 명이 그의 장례행력을 따랐다고 한다. 80여 년간 칸트가 이룬 학문적 성과는 어마어마해서 19세기 철학사는 칸트사상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공리주의에 대한 비판
- 칸트는 공리주의를 맹렬히 비판했다. 공리주의는 무엇을 하던 간에 최대행복에 기여하는지 수치로서 가치를 매겨본다. 심지어 사람의 생명조차도 하나의 수치로 표현한다. 또한 인간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나 당연히 지켜야할 의무를 말할 때도 수치로 가치를 매긴다면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인간에게 많은 쾌락을 주는 일이 반드시 도덕적으로 옳다고 볼 수도 없다는 점이다.
도덕은 사람들이 드러내는 흥미바람욕구기호 같은 요소에만 좌우될 수 없다. 이러한 요소들은 가변적이고 우연적이라서 도덕의 보편적 원칙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3)자유(칸트의 견해)
-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유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상태이다. 즉 소극적 자유를 뜻한다. 하지만 칸트의 생각은 이러한 소극적 자유와는 다르다.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크 샌델/김영사/2010
칸트 윤리학과 형식주의/문성학/2006
한권으로 읽는 서양철학사 산책/강성률/2009
(초등학교 교사용 지도서)도덕,5/대한교과서/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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