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통한 용기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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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야기를 통한 용기 교육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자신의 소신을 갖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나를 향한 요구에 응하며 살다 보면 내가 무엇을 위해,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를 잊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소신을 행동에 옮기는 용기는 얼마나 실천하기 어려운 덕목인지, 급변하는 사회에서 적응하는 것도 바쁘다 보니 대의를 위해 작은 것들을 버렸다는 인물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듯 하다.
한편, 다음 두 가지의 측면에서 용기라는 덕목의 매력을 찾을 수 있다.
첫째는, 대부분의 경우 딜레마 상황에 빠지게 된다는 점이다. 용기의 사전적 의미는 씩씩하고 굳센 기운. 또는 사물을 겁내지 아니하는 기개’라 한다. 용기는 다른 무언가의 희생이 동반되어야만 붙여지는 명예로운 이름인데, 희생되는 대상이 개인의 자그마한 이익인 때도 있지만 생명이 희생되는 극단 적인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무서워하는 개 옆을 지나가본다는 것은 신체적 혹은 심리적 안정과 자신감 사이의 갈등이고, 윤봉길의사의 폭탄 투척은 자신을 비롯한 여러 생명의 희생과 우리의 광복 사이의 갈등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는, 철저하게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며 행위의 동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여타의 선한 가치들은 대체로 좋은 결과를 보장하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향한다고 할 수 있다. 정직, 성실, 배려, 존중, 절제 등은 모두 공공에 대해 어느 정도의 선한 결과를 전제하고 있고 그렇기에 선한 행위임을 여러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용기는 다르다. 이는 결과를 전혀 예측할 수 없으며 그저 자신이 어떤 행위를 한 그 순간의 심리상태나 의지만이 강조되는 덕목이다. 예를 들어 이승복 어린이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했을 때 정직의 덕목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은 것이 결코 바람직한 결말이 아니라 할 수 있음에도 어쨌든 죽음을 무릅썼기에 용기의 덕목 하나만은 확실히 지킨 것이다. 즉, 행위자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서만이 용기가 실현될 수 있으며 결과와 관계없이 소신을 지켰는가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용기가 부족하면 비겁이요, 지나치면 만용이라 했다. 적절해야만 용기라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어느 정도가 적절한 것일까. 비겁은 무언가가 두려워서 하고픈 일을 못하는 것이므로 쉽게 알 수 있지만 만용과 용기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만용의 의미는 분별없이 함부로 날뛰는 용맹이라 한다. 즉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결과를 충분히 예상하지 않은 채 덤비면 아무리 큰 희생을 치렀다 해도 만용으로 평가절하되어 버리게 된다. 용기를 내야 할 상황이라는 것이 결과를 담보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임에도,(그러니 용기가 필요한 것일 테니까) 이를 예상하여 내 분수까지 재어야 한다면 용기는 너무나도 난이도 높은 가치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에 용기란 어떠한 것인지를 명확히 해둠으로써 복잡한 딜레마 상황에서 행위를 선택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본 이야기교육을 구성하여 보았다. 용기는 내용으로서 설명하기 쉽지 않으므로 역시 칸트나 콜버그처럼 판단하는 방법’을 형식으로서 알려주는 편이 다양한 상황에서 적용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런데, 이 글을 구성함에 있어 용기라는 덕목의 구체적인 내용이 교육과정에 명시되어 있지 않기에, 사전적 의미와 교과서상으로나 사회적으로 용기 있다고 평가 받는 행위를 분석하여 그 특성을 두 가지로 드러내었고. 이 특성을 토대로, 실제 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구성하고 발문을 하는 방법을 취하였다.
2. 용기와 관련된 이야기
이야기1) 바다로 날아간 까치
제 고향은 바닷가 솔숲입니다. 이 솔숲을 저는 참으로 사랑합니다. 저는 아침마다 해 뜨는 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솔숲을 한 바퀴 휘돌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저의 그런 행복은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어느 날 문득 바다로 날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탓이었습니다.
어느 날, 몇 번 망설이던 끝에 바다로 날아가고픈 제 마음을 어머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놀라 펄쩍 뛰셨습니다.“얘가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우리에게 바다로 날아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일이야. 우린 갈매기가 아니야, 우린 까치야. 우리에게는 바다를 여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아침해가 그 아름다운 빛으로 우리를 유혹하지만. 그 유혹에 못 이겨 바다로 날아갔다가 그만 영영 돌아오지 못한 까치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 저는 어머니의 말씀이 백 번 옳은 말씀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온몸의 기운이 쑥 빠졌지요. 그런데 아침에 해가 뜰 때마다 눈부신 햇살에 몸을 떨었습니다. 바다로 날아가서는 안 된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결코 잊은 것은 아니었으나, 바다로 날아가다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결국, 찬란한 아침 해가 제 마음을 못 견디게 만들던 그날, 저도 모르게 그만 바다를 향해 날개를 펼치고 말았습니다. 제가 살던 솔숲이 멀리 조그맣게 한 점처럼 보이더니 이내 사라졌습니다. 겁이 더럭 났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었습니다. 죽어도 좋다. 바다는 내가 얼마나 날아보고 싶었던 곳이냐. 날아갈 수 있는 데까지 날아가자!’
얼마나 바다 위를 날고 있었던 것일까요. 햇살에 반짝이는 푸른 바다의 물결은 황홀했고, 바다 위를 직접 날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다가올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까치에게 바다는 오직 죽음일 뿐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