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이 왕국을 형성함으로써 국왕은 신적인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국가의 군사력에 의존하게 되었다. 왕국의 시작에서부터 마지막 붕괴의 순간까지, 온갖 세장적인 권력과 야훼 신앙 사이에서는 서로가 살아남기 위하여 체열한 대결이 벌어졌다. 이 대결의 과정이 바로 이스라엘 왕정의 역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
왕을 세운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거기에 따르는 의무와 책임을 각오해야 한다. 이처럼 하나님을 떠나는 자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없을뿐더러 그 삶에 있어서도 엄청난 짐을 감당해야 한다. 왕정 시대에 일했던 예언자들의 역할을 이런 군주국가의 지배체제 속에서나마 백성들에게 여호와 신앙을 지킬 것과 여호와 신앙으로 철저히 순화되어야 함을 주장하는 일이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서는 국가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하나님의 신앙 입장에서 쉼없이 행해지고 있다. 하나님은 그 분 자신의 높으신 뜻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사람의 악한 행위까지도 허용하시며(창50:20,행2:23) 또한 인간의 자유 의지도 어느 선까지는 허용하시고 계신다.
2. 분열왕국 (B.C 930 ~ 586년경)
솔로몬 통치 말기가 보여 준 왕국 균열의 조짐이 마침내 현실화된 암울한 이스라엘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 부분이다. 즉 전장이 서서히 균열이 가던 댐이 마침내 터져버리고 만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분열왕국의 첫시작을 연다. 열왕기상 12장이후로 남북으로 분열된 오아국은 다시 합쳐지는 일없이 제각기 굴곡을 겪다가 몰락해 갔으니 엄청난 민족적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왕국 분열’은 솔로몬의 죄악과 관련, 이미 하나님께서 예고하신 심판의 결과이다. 그런데 그 일이 성취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인간적 측면의 요인들이 복합되어 작용되었다. 즉 그 동안 항상 저변에 깔려 있던 남북 지파간의 갈등, 전통과 혁신 노선의 대립, 여로보암이라는 야심가의 존재 등등이 왕국 분열 사태에 복합, 연계되어 있다. 또한 부각되는 면은 르호보암의 우둔함이다. 그는 장로들의 고견을 버리고 모리배들의 아첨에 가까운 진언을 채택하여 턱없는 강압책을 쓴 끝에 북부 백성들의 반발을 사 결국 나라를 분열 지경에 몰아넣고 말았다. 이스라엘 왕국 분열이 돌이킬 수 없는 결론으로 확정되고 있지만 적지않은 부분은 르호보암의 포학한 대답이 나오는 그 순간, 다윗왕조를 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대를 소멸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왕국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이 부분의 표현을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고 논평한다.(왕상12:15)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이루어 나가고 있었다(왕상 11:29-33,12:15) 하나님께서는 백성의 통치자로 세운 솔로몬이 그의 명령을 순종치 않는 것을 묵과하실 수가 없었다. 마침내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의 왕국은 갈라졌다. 그때로부터 이스라엘은 오늘날까지 약3,000년 동안 분리된 상태로 머물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결국 죄로 인하여 분리된 것이다. 왕국은 분단되어 결국은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왕하17,25장) 그 때에 갈라진 이스라엘은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시게 될 때 다시 통합하게 되리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일러준다.(사 11:10-13, 겔 35:15-28)
3. 사건들의 요약
1. 통일왕국
구 분
강 조 점
이스라엘 왕들의 드라마적 삶 - 엘맨출판사/정흥기 지음
이스라엘의 실패와 신정국가 - 크리스챤서적/S.G.DE. 그라아프 저
이스라엘 왕들의 이야기 - 대한 기독교서적 / 임태수
구약개관 -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 윌리엄 S.라솔 외
역사적 구약개요 -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 유진 메릴
구약의 기독론 -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 E.W. 헹스텐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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