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성장과정과 생활환경
작가가 살던 당시 시대상황
2. 작가의 작품들
-협력 이전의 작품 성향
-협력 이후의 작품성향
3. 고요한 폭풍
-줄거리
-고요한 폭풍 속에 담긴 협력의 길
★ 2002년 8월 14일- 여러 가지 민족문학 단체에서 친일문학인
42명의 명단을 발표 → 이날 공개된 친일 문인:
노천명, 채만식, 최남선, 서정주
정인택, 박영희, 이석훈 등
★이 광 수나 서 정 주 등 유명한 작가들의 경우
: 당시 친일에 대한 시비도 물론 있었지만 그들의 문학작품에
대한 접근이 먼저 이루어 졌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은
문학교과서에도 공공연히 실릴 수 있었음.
★이 석 훈은 일찍부터 친일작가로 낙인 찍혀 있었기 때문에
그 작가의 작품까지 모두 묵과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했음.
이 석 훈(李石薰)
→ 소설가로서 평안북도 정주군 출신.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
일본에 유학하여 와세다 대학 노문학부에서 수학
→ 1920년대부터 언론인으로 활동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 등 신문사 기자, 경성방송국, 평양방송국 등의 방송사에서 근무한국 방송사의 초창기에 활동한 아나운서 근무.
→잡지사인 개벽사가 발행하던 월간지 《제1선》 편집자
→193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 희곡 〈궐녀는 왜 자살했는가>로 등단
→1933년 , 〈이주민열차> 등을 발표.
극예술연구회에 동인으로 가담,
신극운동에 참가 등 연극활동 참여.
→1936년 문예지 《낙랑문고》를 창간해 발행.
→1939년 [조선일보사]에 입사 [조광], [여성] 등을 편집.
→1944년 《만선일보》에 합류.
당시 만선일보에는 염상섭, 안수길, 박팔양 등 유명 작가들이 근무하면서 일명 만주문단을 형성.
→ 1948년 대한민국 해군에 중위로 입대
→1950년 제대. 제대한 직후 한국 전쟁이 발발.
그 해 7월경 서울을 점령한 조선인민군에게 체포되어
서울형무소에 수감된 것을 마지막으로 행적을 알 수 없음.
▷1907년 1월 27일 평안북도 정주군 정주읍 성외리에서
부친 이준기씨와 모친 방준원씨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남.
▷그의 부친은 한때 정주읍장을 지냈으며 읍장직을 그만둔 뒤로는 소유하고 있던 과수원을 은행에 저당하고 그 대출자금으로 정주 앞바다 애도에서 백하가공공장을 경영.
→ 비교적 소년시절을 유복하게 보냄.
▷아버지의 백하가공공장에 화재가 남.
파산을 당하여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1928년에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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