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정주영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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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 정주영에 대해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박정희와 더불어 한국 경제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정주영에 대한 논란이 많다. 정주영이 누린 특혜에 비하면 그의 업적은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의견과 경영인으로서의 그의 업적과 사상은 훌륭하다는 의견으로 나뉘어 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그의 생애를 중심으로 그의 업적과 사상, 한국 역사에 미친 영향등을 알아보려 한다.

한국형 기업가의 표본으로 불리는 정주영은 1915년에, 지금은 휴전선 북쪽으로 귀속된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태어났다. 정주영은 육남 이녀 중 장남이었다. 요즘 같으면 유치원을 다닐 나이인 여섯 살 무렵, 정주영은 조부가 훈장으로 있는 서당을 다니면서 공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시절도 잠깐, 열 살무렵부터 그는 농사꾼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어린 정주영은 새벽 4시께면 졸린 눈을 비비며 시오리 길 떨어져 있는 들판으로 아버지를 따라 나서야 했다. 하루 종일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일을 하노라면, 어린 마음에도 이렇게 힘든 것에 비해 소득은 보잘 것 없는 농사일만 하며 일생을 보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래서 농촌을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가출을 단행하게 된다. 그리고 공사판에서 막일을 하다가 아버지께 붙들려 시골로 돌아오게 된다. 두 번째 가출은 서울로 가는 도중 사기꾼에게 사기를 당하고 빈털터리가 되어 금화에 있던 둘째 할아버지 댁에 들르게 되었는데 그것이 불찰이 되어 또다시 아버지에게 붙들려오고 만다. 다시 잡혀 왔지만 농촌을 떠나서, 일한 만큼 벌 수 있는 곳을 찾겠다는 그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정주영은 아버지가 궤짝 속에 넣어둔 소 판 돈을 훔쳐 이번에는 기차를 타고 곧바로 서울로 올라와 부기전수학원에 등록하고 공부를 시작했다.그러나 20일쯤 지나자 아버지가 나타나셨다. 이번에는 죽어도 안 내려가겠다고 버텼지만, 엄하시기만 하던 아버지의 통사정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고향에 내려온 정주영은 이듬해까지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
정주영이 19살 되던 해 늦은 봄, 이번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서울에 가서 성공하고 만다는 마음을 먹고 다시 고향을 떠난다. 인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