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유교
1. 인물로 보는 유교의 사상적 흐름
2. 국내 ․ 외 정세 속의 유교
3. 효선편의 해석
Ⅲ. 결론
3) 원효대사의 아들인 설총은 신라 10현이라 일컫지는 사람들 중 하나였으며 신라 유교의 이론적 토대를 설립하였다. 설총은 스스로 복성거사라 불렀다. 그는 경서와 역사서를 통달하였으며 방음으로 중국과 신라의 풍속과 물건 이름에도 통달하여 육경과 문학에 토를 달아 풀이 하였으니 지금도 신라에서 경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전수하여 끊이질 않고 있다.
4) 삼국유사 속에서 최치원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일연이 그의 글을 많이 인용하고 참고했다는 점을 알 수가 있다. 신라 말의 유명한 유학자 최치원은 제왕연대력을 지었으며 삼국유사 p. 73
모두 왕이라 칭하고 거서간, 마립간 등의 칭호는 비루 하다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았다. 이것을 보면서 김부식의 경향과 유사성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또한 괴이하거나 유학적 관점에서 어긋나는 점을 서술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부식은 그가 중국의 역사서에서도 그 당시의 방언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당시의 언어를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김부식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해석 삼국사기 신라본기 4권 지증 마립간
이와 달리 김대문은 마립의 관해 기록으로 남겼다. 최치원은 당에서 급제를 하고 본국으로 귀국하였는데 당에서 토황소격문을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진성왕 8년에는 시정개혁안으로 추정되는 시무10조를 올려 아찬에 이르렀으나, 이 후 관직을 사퇴하고 어려운 시절을 만난 것을 한탄하면서 해인사에 은둔생활을 하였다. 최치원은 유교적 입장의 선비였으나 다른 분야에 개방적인 지식인 이였다. 일연이 의상법사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 나머지 내용은 최치원이 지은 본전과 같다 하였으니 삼국유사 p. 467
의상에 관한 글을 남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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