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한미유엔군의 북진공격(09)
2. 이승만대통령의 희망과 현실
3. 미국의 참전과 북진
4. 한미군의 북한 점령
1. 한국전쟁의 개시와 미국
1949년 12월 미국 정부는 공산주의국가들에 대해서 ‘봉쇄(containment)와 반격(rollback)'이라는 정책이 탄생하였다. 그리고 1950년 4월, 미국은 이것을 적극적으로 실행한다고 선언하여 본격적으로 냉전 체제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이 사이에 1950년 1월 12일 국무장관 애치슨이 애치슨 선언을 발표하는데 알류샨 열도․일본 본토․오끼나와․필리핀을 잇는 미국의 군사방위선이었고 여기에 한국과 타이완은 빠져있었다. 이 부분에서 미 공화당 등 보수주의자 사이에서 공산주의자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었다고 비난받거나, 수정주의자들처럼 미국인 북한을 유인했다는 설이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애치슨 선언 직후 북한은 애치슨라인이 남한을 포함한 것으로 보면서 강력히 비판하였다는 점, 쁘라우다에 실린 비신스끼의 성명에 애치슨라인을 침략선이라고 비난은 하지만 남한과 타이완이 벗어나있다는 것에 특별히 언급하지 않은 점 등 유인했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커밍스는 가능성은 있다고 신중히 말하고 있다. 한편 미국의 덜래스는 한국전쟁 발발 직전 한국국회에서 남한방위의 보증을 표명했다(커밍스는 어떠한 정책변경의 의미도 담지 않는다고 보고 있지만).
미국이 북한의 공격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인가가 문제가 되는데, 새롭게 검토된 자료를 보면 미국은 중국조선인부대의 귀환과 38도선 배치 등 북한 병력의 움직임에 대해서 소상히 파악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G2보고서에서는 북한의 침공을 예측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워싱턴에서는 북한을 소련의 괴뢰정권으로 보면서 소련의 정세파악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북한의 침공이 결정될 것으로 판단하여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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