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한미유엔군의 북진공격(05)
2. 이승만대통령의 희망과 현실
3. 미국의 참전과 북진
4. 한미군의 북한 점령
1949,50년에 미국은 동아시아를 비롯해 세계 도처에서 소비에트 세력의 팽창을 막고 소련의 지배와 영향력을 축소시켜 소비에트 시스템 내부를 파괴하는 적극적인 ‘봉쇄’, ‘반격’의 전략을 취할 것을 선언하였다. 이 시기에 알류샨 열도, 일본 본토, 오끼나와, 필리핀을 잇는 -한국과 타이완은 포함되지 않는- 불퇴 방위선’이라 불리는 애치슨라인이 발표된다. 브루스 커밍스는 애치슨의 연설이 북한에게 직접적인 효과는 주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나, 애치슨 연설 자체는 상대를 유인하는, 상대가 행동할 것을 기다리는 적극적 봉쇄 전술이라고 분석한다. 소련은 남한이 제외된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남한 포기론의 하나로 보고 북한의 행동계획을 승인하였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승만이 북진계획을 주장할 때 미국은 경제면의 재건, 국내 체제의 안정이 중요하고 보았다. 사실 이승만과 그의 측근들은 5·30 선거에서 대패하였으며 인사개혁 또한 미국의 입맛에 맞게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미국의 입장에서도 정권이 안정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은 북한 정부의 공격적인 자세는 그 배후에 소련이 강한, 목적의식적인 지휘가 존재하며 한반도 침공은 소련의 지령, 세계정세 평가, 아시아의 여러 국가에서의 공산주의 투쟁 상황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미국은 한국군사지원단 연락 사무소를 세워서 각종 북한군의 행동 양태와 소련과의 접촉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으나, 결정적인 6월 침공설 또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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