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중공군의 개입과 국제전(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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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남북분단과한국전쟁] 중공군의 개입과 국제전(41)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다시 중국의 참전에 대하여

2. 중․미 전쟁의 체제와 전개

3. 정전회담의 개시
본문내용
■ 다시 중국의 참전에 관하여
한국전쟁이 시작되어 북한군이 파북지세로 남진하는 동안 중국측은 미군의 반격이 있을 것을 예상하여 참전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었다. 중국이 가장 걱정한 것은 미국의 공군력과 원자폭탄이었는 데, 마오쩌뚱은 이와 상관없이 참전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황이 불리해지자 북한은 소련에 직접적인 군사지원을 요청하며, 이것이 불가능하면 중국이나 그 밖의 인민민주주의 국가의 국제의용군 부대를 조직하는 것을 원조해 줄 것을 부탁한다. 이에 대해서 스딸린은 의용군부대에 의한 지원이 가장 용이하다는 입장을 전달하였다. 한편 중국공산당 정치국확대회의는 찬반논란 끝에 10월 5일에 즉시 출병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소련의 지원 특히 공군력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 소련과 협상을 벌이며 스딸린으로부터 지원 약속을 받지만 소련은 여전히 직접 참전에 따른 부담을 의식하여 공군지원을 망설인다. 이에 대해서 중국은 10월 12일에 소련의 공군지원이 없더라도 참전할 것을 최종 결정하게 된다. 중국이 참전을 결정한 것은 북한이 패전하여 결국 미군이 직접 압록강까지 진격하게 되면 중국내외의 반혁명세력들이 더욱 준동하게 되어 중국 본토자체가 위협을 받게 될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국의 결정에 대해서 소련은 지원에 상당히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게 되며, 10월 중순이후 소련의 공군부대가 중국 동북에 진주하여 지원을 하게 된다. 다만 소련 공군 비행사는 중국 공군 비행복을 입고, 기체에는 북한 마크를 붙여서 소련군이 참전하고 있음을 숨기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