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분단과한국전쟁] 중미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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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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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다시 중국의 참전에 대하여

2. 중․미 전쟁의 체제와 전개

3. 정전회담의 개시

본문내용
제 5장 중미전쟁

1. 다시 중국의 참전에 관하여
한국전쟁 당시 중국이 타이완 침공작전을 현실의 일로 생각했는지는 하나의 주요 논점인데, 주졘룽은 당시 중국이 해공군의 부족 등 작전준비를 갖추지 못했고, 한국전쟁을 계기로 오히려 작전준비를 중지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시작된 후 사람들은 미군의 반격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미국과 중국의 군사력 역량 비교 시, 공군력과 원폭의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마오쩌뚱은 내내 미국과 싸울 수 있으면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후 원폭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그의 의견이 주류가 된다. 1950년 8월 13일 한국전쟁 참전 문제와 관한 최초의 합동군사회의인 동북변방군 간부회의가 열렸는데, 여러 면에서 자신들이 우세하다고 생각하고, 미의 원폭투하에 대해서도 긍정적 입장이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쟁의 흐름이 변하자, 스탈린은 조선인민군의 지휘와 전술, 그리고 소련인 군사 고문을 비판하며 최대한 북한 지도부에 동정적이었다. 10월 1일 김일성과 박헌영은 스탈린에게 소련의 지원과 중국군의 원조에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는 전보를 보냈고, 이미 이 날 중국인민해방군 출병 요청문을 가지고 박헌영이 베이징에 도착해 있었다. 스탈린은 슈지코프가 김일성의 요정을 거부한 것이 옳지 않다고 비판하며, 김일성과 박헌영을 방문하여 장비는 전면적으로 제공하겠으며 조선 정부의 힘을 조직하고 방위를 위해 모든 가능성을 이용하라, 적의 후방에서 빨치산전쟁을 조직하라, 지도부를 재건하라, 의용군부대에 의한 지원으로 중국 종지와 상의하여 회답하겠다 고 전했다.
중국공산당 정치국 확대회의는 10월 2일 참전을 결정했으나, 회의는 계속 진행되어 마오쩌뚱의 필사적 설득으로 10월 5일 즉시출병 결의를 채택하고, 8일 펑떠화이를 총사령으로 하는 중국인민지원군 설립에 관한 명령이 내려졌다. 스탈린의 공군 출동 거절로 12일 출동정지 명령이 내려졌으나, 마오쩌뚱은 13일에 소련 공군의 지원이 없더라도 중국은 참전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저우언라이는 모로또프와 교섭하여 공군원조, 장비제공 면에서 합의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스저의 증언에 따르면 저우언라이는 중국 국내 상황과 주관적 요소를 따져 스탈린을 견제하고 원조를 끌어내려 했으며, 스탈린은 적이 전 조선을 점령하면 죽국 동북에 안녕할 나날이 없고, 조선동지가 희생된다면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철수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소련은 조선 철수를 선언한 이상 재출병은 미국과 직접 교전하는 것과 같으므로 중국이 일정병력을 출동시키며, 소련은 무기와 장비를 공급하고 작전 시 일정량의 공군을 출동시켜 (포로 문제 때문에) 후방과 전선 주변의 활동에 한정하여 엄호하겠다 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