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예전에 포트폴리오 작품으로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작업을 한 적이 있다.
여기서 행복을 준다는 의미는 단순히 상대방에게 인위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상대방이 원하는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물론 처음엔 나 또한 단순히 그렇게 생각을 했지만 행복의 지속성을 생각해보았을 때 그것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 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은 진정한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상대방에게 행복을 주는 것과 동시에 나 스스로도 행복을 느끼고 그것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음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이 무엇일까...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그냥 내가 존재하는 것.
나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상대방에게 행복을 준다면 이는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가 큰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난 내 삶에 있어서 행복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산다. 또한 행복이란 것에 나름의 해석을 가지고 있고 평소에도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할 정도로 행복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며 그 의미를 내 삶에 실현시키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내가 아리스토텔레스를 과제 주제로 정한 이유이다. 위대한 학자가 생각하고 정의한 인간의 행복에 대해, 또 그 의미에 대해 알고 싶었다. 또한 위대한 학자이기에 앞서 나와 같은 한 인간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나와는 어떻게 다른 생각을 하는지 더 자세히 알고 배우고 싶었다.
이론
Q1 인간 행동의 궁극 목적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윤리설은 인간을 포함한 우주 삼라만상은 태어날 때부터 실현할 어떤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으로 인간 행동이 어떤 목적을 지향한다고 보는 데서 시작한다. 목적들은 다양하며 그 중 어떤 목적은 다른 목적에 종속되고, 그 다른 목적은 또 다른 목적에 종속될 수 있다. 따라서 마지막에는 궁극 목적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인간 행동의 궁극 목적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선이 그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면 무엇이 최고선일까? 즉 우리의 궁극 목적이 되는 최고선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행복(eudiaimonia)이 그것이라고 답한다. 이런 점에서는 그의 윤리설은 행복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란 "잘 살고 편한 것"과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는 데 모든 사람이 동의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만일 행복하다는 것이 최선의 삶을 사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 말을 도덕적 판단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만일 우리가 도덕적 삶을 산다면 물론 칭찬받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산다면 축하받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높이 평가 받는 것과 칭찬받는 것을 자주 구별한다. 행복은 높이 평가받는 것이다. 그것은 성공 즉 성취이다.
Q2. 행복은 무엇인가?
첫째로 행복은 복합적인 것이다. 이상적인 삶은 그것이 포함한 한 가지 요소에 의해서만 이상적인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준들 또는 희망 사항을 가진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매우 못생기고 천한 출신이며 외롭거나 아이가 없다면 행복할 수 없다. 또한 돈도 필요하다. 즐거움과 우정, 그리고 모든 인간적 탁월성은 행복에 필수적이다.
최상의 삶의 후보로써 상식적으로 거론되는 세 가지 유형의 삶은 감각적 즐거움의 삶과 세속적인 일에 연루된 삶, 그리고 이론적 성찰의 삶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보다 구체적으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의 특징적인 기능이 무엇인가에 대해 묻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성장과 재생산은 동물, 식물과 공유하는 기능이고 감각은 동물과 공유하는 기능이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특징적인 기능이 될 수 없다. 『De Anima』에서 밝혀진 것처럼 인간 속에는 이러한 기능들 위에 더 상위의 기능이 놓여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계획, 규칙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부른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안에 계획을 이해하고 그것에 따르는 부수 기능이 포함된다. 행복은 이러한 기능의 삶임에 틀림없다. 둘째로 행복은 단순한 잠재태(potentiality)가 아니라 현실태(activity)임에 틀림없다. 셋째, 행복은 덕에 따르는 것임에 틀림없다. 만약 하나 이상의 덕이 있다면 최선의 가장 완벽한 덕에 따르는 것일 것이다. 넷째, 행복은 단지 짧은 시기에 드러날 뿐만 아니라 전 생애를 통해 드러남에 틀림없다. 이러한 정의는 행복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과도 부합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덕에 부합하는 활동이라고 보기 때문에 덕의 본성에 대한 세밀한 논의를 전개한다. 그가 보기에 인간의 영혼 안에는 논쟁을 이끌거나 계획을 만들 수 있는 엄밀한 의미의 이성이외에 계획을 따를 수 있게 하는 부분이 함께 있다. 이것은 우리 안에 있는 이성적 요소로도 비이성적 요소로도 분류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욕구(desire)하는 기능이다. 따라서 인간의 이성적 삶속에는 두 종류의 덕이 있다. 이성적 요소의 덕과 매개적인 요소의 덕, 즉 지성의 덕과 성격의 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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