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공포 우먼 인 블랙
평소에 대학로 소극장 연극이라고 하면 ‘라이어’나 ‘보잉 보잉’같은 대중적인 코믹 연극들을 보아왔던 나에게 ‘공포’라는 장르의 연극은 너무나도 생소했다. 때문에 교수님이 제안하신 3가지 연극 중에서 나는 공포연극인 ‘우먼 인 블랙’을 선택하였다. 일찍 예매한 덕분에 제일 앞자리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어서 좋았고, 공포라는 장르의 연극은 처음이었기에 그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도 매우 컷다.
영화처럼 공간의 이동이나 특수효과의 사용이 쉽지 않는 제한된 ‘무대’라는 공간 안에서 관객들에게 어떤 식으로 공포를 줄 것인가가 가장 큰 관심 이었다. 연극 ‘우먼 인 블랙’에서는 관객에 공포를 주기 위해 무대 장치의 극적인 효과를 많이 이용하였다. 갑자기 열렸다 쾅! 닫히는 문갑이나 닫히는 문, 바닥에서 나오는 드라이 아이스와 현란한 조명들은 연극의 제한성을 극복하려 하고 관객에게 공포를 주었다. 연극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무대의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무대 뒤쪽을 반투명한 스크린으로 가리고 무덤가와 방 2가지 공간으로 사용한 점은 무대의 제한성을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연극 ‘우먼 인 블랙’에서 주로 공포를 주는 방식은 긴장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나타나는 귀신이나 닫히는 문, 큰 비명소리 등이 었는데 갑작스런 충격을 주기 위해 사용한 무대 장치들은 효과적이었다. 바닥을 나무 틀로 이용하여 바닥에 조명이 무대로 새어나와 갖가지 색으로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과 열리는 문 틈으로 빛이 새어나오게 하는 것 등의 조명연출은 훌륭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단지 손전등만으로 주위를 하나 하나를 비출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손전등의 빛에만 의지한 주인공의 시선을 관객이 따라가며 숨막히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극이 기존의 소설을 각색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이러한 장치들은 소설과 연극과의 차이를 극복하고 극적인 효과를 높여주기 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처럼 설명이나 묘사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무대 장치와 음향을 넣은 것이다.
그러나 연극이 끝나고 나오면서 만약 작가가 스토리로 관객에게 소름과 공포를 느끼게 했다면 정말 굉장한 연극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극적으로 공포를 느꼈을 때는 단지 무대 장치로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할 때와 극의 끝에 아이들이 모두 죽었다고 했을 때, 극의 초반부에 킵스와 배우가 나누었던 대화에서 배우에게 5살 난 아이가 있다고 하자 킵스가 의미심장한 말이 떠올랐을 때 뿐이었다. 스토리적 반전을 작가가 의도했던 극에 등장한 여자 귀신을 아무도 섭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오히려 너무 진부해서 극의 몰입도를 떨어뜨렸다. 공연장 안에 있던 관객들 중 그것을 예측하지 못한 관객은 아마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연극 ‘우먼 인 블랙’은 ‘극중 극’ 구조를 가지고 있다. 중년의 아서 킵스가 과거 자신의 경험을 극을 통해 보여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연극을 보는 내내 내가 놀랐던 것은 이 연극에는 단 2명의 배우가 등장하지만 연극을 통해 그들이 8명의 인물을 표현해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주인공 아서 킵스 역을 맡은 배우 홍성덕은 킵스, 레스토랑 직원, 강아지 스파이더, 마부 퀵스 등 총 6명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한 배우가 이렇게 많은 인물을 연기하면서도 관객이 혼돈하지 않고 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연극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사용한 소품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부를 연기할 때는 모자를, 레스토랑 직원을 연기할 때는 앞치마를, 그 외 지팡이와 겉옷 등을 사용하여 극을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역할을 혼돈하지 않고 극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러한 장치들 덕분에 단 2명의 배우가 많은 역을 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흐름을 이어갈 수 있었다. 또한 2명의 배우를 사용하면서도 외부극의 킵스와 내부극의 킵스를 다른 배우가 연기하게 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방지하였다. 그리고 외부극과 내부 극을 구분하기 위해서 조명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외부 극을 연기할 때에는 밝은 조명을 사용하였고 내부 극으로 들어갈 때에는 조명을 어둡게 하여 관객이 이것이 내부 극임을 자연스럽게 알도록 하였다.
또한 이 연극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배우들의 연기였다. 맨 앞에 앉은 나는 배우들의 표정 변화와 몸짓 등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지난번 ‘적도 아래의 맥배스’보았을 때는 공연장이 커서 배우들의 연기를 자세히 볼 수 없었는데 소극장에서 보니 흐르는 땀방울 까지 보여서 극에 몰입도가 커졌다. 연극을 보며 느낀 것은 배우가 연극에 몰입할 때에는 튀기는 침이나 튀어나온 목의 힘줄 조차도 극적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공포연극 이니만큼 배우들이 두려움에 떨거나 울부 짖는 장면이 많았는데 이때 배우들의 연기는 나도 놀랄 정도였다. 특히 배우 ‘홍성덕’은 외부 극 에서 내부 극을 연기할 때 연기가 어색한 모습을 잘 연기하였다. 극의 몰입 도를 위해 처음 연기할 때는 어색하게 했지만(어색한 말투와 대본의 지시문까지 읽는 모습은 인상 깊었다.) 차차 시간이 흐르고 외부 극을 제쳐두고 내부 극에 몰입하면서 자연스러운 연기력을 보여 내부 극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 주었다.
연극의 특성상 관객의 상상에 의존하는 점이 많았던 것도 흥미 있게 보았던 부분이었다. 대부분의 소품들은 생략되었기 때문에 건내는 명함이나 타는 말, 마차등은 음향 효과만을 이용해 표현하여 보는 관객이 상상하도록 하였다. 외부 극에서 킵스가 없는 마차를 어떻게 표현 하냐고 하자 배우가 “상상력이 잖아요! 관객에게는 상상력이 있다구요!”라고 했는데, 연극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들이 떠오르면서 그 대사가 마음에 와 닿았다. 이 연극도 관객의 상상력이 있기에 극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명이 6명을 연기하는 것도, 소품 하나로 배역을 표현하는 것도 관객의상상력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 ‘우먼 인 블랙’은 극의 초반에는 공포의 요소보다는 유머나 일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극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극의 중, 후반부에서 여러 가지 시, 청각적 요소들을 이용해 공포심을 주고 있고, 극의 클라이 막스에는 유령이 직접 등장하여 관객을 깜짝 놀라게 만든다. 극중 극 구조로 이야기를 끌어 나가는 것과 외부극과 내부극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점,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무대장치들은 좋았지만 스토리 상의 한계로 인해 관객에게 극적인 공포를 안겨주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연극은 영화가 아니다. 때문에 무대 장치나 음향으로 공포를 주기 보다는 연극이라는 장르의 독특함을 강조하여 예상치 못한 반전이나 눈 앞에 펼쳐지는 현장성을 강조하여 공포를 주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공포심을 주기 위해 극을 너무 끄는 것은(하강적 요소를 많이 사용하는 것) 관객으로 하여금 지루함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이 아쉬웠던 연극이었다. 내 생에 처음 접한 공포 연극이기에 무척이나 설레 였고, 단 2명의 배우로 많은 인물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또 한번 놀랐다.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새로 접한 장르이니 만큼 인상 깊었고 흥미로웠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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