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사람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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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사람의 아들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사람의 아들
유년 시절 몇 년을 시골에서 살았던 적이 있던 나는 성탄절이 되면 작은 시골 교회에서 하는 연극을 보러 교회에 가곤 했다. 그때는 성탄절이 뭔지 종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들뜬 마음으로 따라가 아이들과 연극구경도 하고 찬송가도 부르고 왔었는데 그때마다 목사님이 나와서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어린 나였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찬양 합시다’와 ‘아멘’ 이었다. 찬양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저 남들 하는 대로 따라했을 뿐.. 어느덧 어린 나는 자라나 청소년이 되었다. 청소년이 될 때 까지도 어떤 특정 종교에 믿고 의지해 본적이 없던 나였지만 정말 힘들 때 마음속으로 기도를 한 적은 많았다. 나만의 방식으로 나 스스로의 하느님께 기도하며 의지 했던 것이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기독교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가장 큰 이유가 같은 반 아이가 교회에 같이 가자고 나에게 계속적으로 청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는 하느님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 하며 집요하게 교회에 함께 가기를 원했고 그런 그 아이의 행동은 나에게 기독교에 대한 묘한 반발심까지 가지게 하였다. 교회가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그렇게 찬미조의 발언을 하며 같이 가자고 하는지 궁금했던 나는 중학교 3학년 그때 처음으로 교회를 몇 번 따라가 보게 되었다. 작다면 작은 교회였는데 성가대가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은 큰소리로 찬송을 했다. 늘 그렇듯 목사님의 설교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설교에 경청하는 듯 했다.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목사님의 말씀은 하느님 말씀이니까 잘 들어야해.” 나는 열심히 귀 기울여 들었다. 목사님은 앞에 나와 긴 설교를 했고 그 중 기억나는 것 몇 개는 “○○○이 하느님께 감사 예물을 올렸습니다. 축복해 주소서” 혹은 “혼자만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에 가는 건 욕심쟁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가야한다” 라고 하거나 “십일조를 하지 않는 신앙인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교회에 늘 다녔던 사람들은 그 설교를 당연하게 듣는 것처럼 보였지만 16살의 나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 왔다. 그리고 내 속에는 해결되지 않을 의문이 생겨났다.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을 누가 본 사람이 있는 것인가. 아무도 목격한 사람이 없다면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그 신앙인이 천국에 가는지 지옥에 가는지 누가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십일조를 많이 내면 천국으로 가는 특급열차가 준비되는 건가? 그러면 가난한 자들은 천국을 어떻게 갈수 있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은 정말 존재하는 것인가? 존재한다면 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인가? 등등의 어쩌면 교회를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졌을법한 의문들이었지만 어릴 적 나에게는 미스터리와 같은 것들뿐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충격이었던 점은 목사님이 설교에서 십일조나 헌금같은 말을 강조하는 점이었다. 목사님의 말씀은 분명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들었는데 목사님의 말씀만 들어서는 하느님은 돈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목사님의 말씀 안에서는 감사 예물을 올리면 천국을 가게 되고 십일조를 열심히 하면 올바른 신앙인이 되어 축복받았다. 나는 여러 의문만을 떠안고 더 이상 교회에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내가 의지하는 하느님은 착한 일을 하면 천국에 보내주는 분이셨지 헌금을 많이 내야만 보내주는 분은 아니시니까. 그리고 몇 년 뒤 수능이 끝나고 며칠 되지 않았던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와 길을 걷고 있다가 우연히 어머니와 친구처럼 지내시는
동네 아주머니를 마주치게 되었다. 인사를 했더니 아주머니께서 갑자기 손을 잡으시며 “너 왜 이렇게 예뻐졌니? 정말 이제 시집갈 때가 다 되가는 구나! 너 예수 믿어, 예수 믿으면 좋은데 시집간다.” 라고 나에게 조언 아닌 조언을 해 주셨다. 솔직히 그 자리에서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그냥 웃었다. 도대체 교회라는 게 무엇인지.. 어째서 예수님을 믿는데 좋은데 시집을 간다는 건지. 그리고 문득 누군가가 썼던 글이 생각나 몹시 씁쓸해 졌다. “나는 하느님은 믿지 않지만 교회의 인맥은 믿는다.” 라는 글이었다. 본래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올 때는 배타적인 베풂과 헌신으로 시작하였는데 어째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 본질이 점점 퇴색되어 가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내게는 점점 더 기독교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최근에 들어서 이문열 작가의 소설 사람의 아들을 읽게 되면서 나의 기독교에 대한 의문의 갈증이 약간은 해소가 되었다.
소설 속에서 남경사로 지칭되는 남경호는 변두리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이다. 가진 것도 없고 잘나지도 못한 그는 벌써 8년째 따분한 경찰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에서 어떤 여자를 걷어차 잡혀 들어온 잡범을 취조하던 중 영지면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되고 조사해본 결과 살해자는 민요섭이라는 근처 기도원에 기거하던 신학도였다. 그는 독실한 신학도로 자신을 위해서는 양말 한짝 속옷 한 벌도 제대로 사 입지 않지만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는 자신의 양아버지로부터 받은 많은 양의 재산까지도 아낌없이 쓰는 천사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교회를 등지고 묘연한 행적의 삶을 살게 되는데 남경사가 그의 살인사건을 담당하게 되고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하나둘씩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민요섭을 친자식처럼 길러주었던 노파의 집에서 민요섭이 쓴 듯한 원고 뭉치를 발견하게 되고 남경사는 쉽사리 해결 되지 않을 거 같은 사건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원고를 읽어 본다. 민요섭이 쓴 소설속의 주인공 아하스 페르츠는 예수와 동시대에 태어난 사람이다. 그는 부유한집 자식으로 그의 아버지는 아하스 페르츠가 랍비가 되길 바라며 공부를 가르치고 그 역시 똑똑하고 착하게 자라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믿는 신에 대한 불신과 회의감, 그리고 무능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어 자기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새로운 신을 찾아 떠나게 된다. 하지만 온갖 나라를 떠돌아다니며 각 나라의 신에 대해 공부하여도 결국 자신이 생각하는 어떤 이상적인 신을 찾지 못한 아하스 페르츠는 실망감에 휩싸여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고향에서의 생활도 그리 편안하지만은 않은 아하스 페르츠는 쿠아란타리아 라는 광야로 가서 단식과 묵상을 한다. 그곳에서 젊은 예수와 운명적 만남을 가진다. 아하스 페르츠는 예수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구원이 잘못된 것이라 하고 예수가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가지길 바라며 현실적인 구원을 함께 해가길 바라지만 예수는 아하스 페르츠를 사탄이라 하며 그의 청을 거절한다. 예수의 수많은 거절에도 굴하지 않던 아하스 페르츠는 어느 순간 자신이 예수를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의 거절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스가리웃 유다를 은화 20냥에 매수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에 이르게 한다. 소설을 다 읽었지만 그 소설 속에서 결국 민요섭의 살인 사건과 관련된 정보는 전혀 얻지 못한 그였지만 그 소설에 왠지 모를 매력을 느낀 남경사는 쉽사를 민요섭 사건을 손에서 쉽사리 놓지 못한 채 계속 해서 수사를 한 결과 민요섭은 조동팔이라는 청년과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불우한 자들을 도와주기도 하고 공부가 하고픈 아이들을 돌보며 학교도 보내 주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민요섭의 측근이었던 조동팔을 용의자로 잠정적 지목을 하고 조사한다. 그러던 중 조동팔이 김동욱이라는 가명으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음을 알게 되고 교도소에 연락을 취해본 결과 그가 그날 출소 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한발 늦게 조동팔의 집에 들이 닥친 남경사는 결국에는 조동팔과 만나게 되지만 조동팔은 자신이 민요섭을 살해했음을 쉽게 인정하고 쓰러 진다. 병원에 급히 실려간 조동팔은 이미 독극물을 먹은 상태였고 회생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죽음을 앞둔 조동팔은 “그러나 나까지 패배해 쓰러졌다고는 생각 마시오. 지금 나를 누르고 있는 것은 민요섭의 피지, 우리의 신에 대한 절망은 아니오. 이 시각 이전에나 이 시각 이후에나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은 우리의 신뿐이며, 설령 아무도 느끼지 못하더라도 그 고독한 신성은 언제나 당신들의 머리 위에서 빛날 것이오.” 라는 의미 심장한 말만을 남기고 눈을 감는다.
사실 책의 처음 몇 페이지를 읽었을 때 흔하고 지루한 추리소설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간단한 남경사에 대한 설명들에 이어 민요섭이라는 신학도의 살인사건, 그리고 큰 특징 없는 민요섭의 지난 행적들. 약간은 지루하다 싶은 그의 자작소설이 나를 축 쳐지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의 중, 후반부로 갈수록 나의 책장을 넘기는 손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들과는 무언가 다른 특별함을 느꼈던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난후 나는 약간의 충격에 휩싸였다. 1978년도에 쓰여진 소설이 이렇게 자극적이다니..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그 속에는 기독교인들이 읽으면 혼란스러워할 내용들이 다분했고‘반기독적 성향의 책이다’라는 말만으로는 표현하기가 부족할 정도로 작가는 책속 주인공인 민요섭과 조동팔을 이용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기독교를, 더 크게는 구원해 주겠다는 세상의 갖가지 종교의 모순을 꼬집어 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도 놀란 점은 민요섭이 종교와 하느님에 대해 의문을 가질 무렵 즈음해서 몸담았던 교회의 모습이었다. 그 교회는 마치 내가 어릴 적 잠시 다녔던 교회와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물질적인 것을 원하는 하느님의 대변자 목사.. 소설 속 교회의 목사 역시 마치 하느님이 그것을 원하는 것 인양 위장하여 크고 화려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신자들에게 헌금을 강요하였다. 게다가 예배시간을 줄여가며 품삯 없는 노동을 시키기까지.. 소설 속에는 직접적으로 묘사 되어 있지 않지만 어쩌면 민요섭은 그런 썩어가는 현대 교회의 모습에 기독교를 향한 염증을 느껴 하느님을 부정 하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나로서도 십일조와 헌금을 요구하는 목사의 말이 듣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 돈이라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돈이 무엇이길래 그렇게도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까? 그렇다. 젊은 민요섭은 그 때 느낀 것이다. 지금 자신이 사는 세계에서는 어쩌면 돈이 신의 또 다른 모습일지 모른다고. 그리고 그런 민요섭의 믿음은 다음과 같은 일말의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