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감상문] 서찰을 전하는 아이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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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서찰을 전하는 아이를 읽고
생각해보면 공부는 물론이고 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항상 손에 달고 살았던 독서마저 소홀하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도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쉬는 시간에 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아니다 다를까, 빠르게 소식을 접한 아이들이 내게 책을 빌려갈 수 있게끔 자비를 베풀어주지 않아 당황해하고 있었는데, 마침 사서 선생님께서 ‘서찰을 전하는 아이’라는 초, 중, 고등학생이 다 읽고 독후감을 작성할 수 있는 ‘공용’ 책이 있다는 아주 좋은 소식을 전해주셨다. 공용이라는 책은 생각의 수준은 다르겠지만 누가 읽던지 쉽고 편하게 독후감을 쓸 수 있겠다 싶어 그렇게 ‘서찰을 전하는 아이’를 읽게 되었다.
‘서찰을 전하는 아이’는 동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유치한 표지와는 다르게 굉장히 신선한 책이었다. 우리가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동학농민운동이라는 역사적 사실 위에 작가의 날카로운 상상력을 더한 나름대로의 현실적인 픽션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의 뒤표지에 적혀 있던 ‘과연 녹두장군 전봉준이 밀고를 당할 것을 알고 있었더라면?’ 이라는 작가가 던진 화두가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비교적 다른 책들에 비해 두꺼운 책이 아니었기에 읽는데 많은 시간이 들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머리 속에 맴도는 생각만큼은 다른 책들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작가가 표지를 통해서 던졌던 화두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책 속의 어린 주인공이 한자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고, 또 거기에 대해 다시 철저히 연습하는 것에 대해서 독후감을 써보는 것이 어떨까 했다. 절대 이 세상에는 순수하게 공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의식주는 물론이고 무엇인가를 알아가고자 알아가는 것에도 마땅한 대가가 필요한 법이다. 책 속의 주인공이 자신의 아버지가 맡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피와 살 같은 전 재산을 써가며 한자를 배우고, 또 잊지 않기 위해 쓰고 또 쓰며 암기하는 모습에서, 비록 책 속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고등학교 2학년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배움에 임했는지 회한이 들기 시작했다. 또 물질적으로 돈을 현명하게 관리했던 주인공과는 다르게 나는 돈을 현명하게 쓰고 있는 것인지 과연 나는 학생이라는 신분에 맞게 해야 하는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기 성찰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금은 거부하고 싶고 순응하고 싶지 않은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지만 언젠간 과거의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하고 있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면, 지금까지의 여정에 있어서 끊임없이 달려오지는 못 했더라도 최소한 걸음을 늦추지 않았는지.
가끔씩, 아니 솔직히 자주 피시방이나 잠깐 운동을 하고 담배 냄새나 땀에 절어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꾸준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본분에 임했던 친구들 중 여럿은 아직까지도 그 쉴새 없이 발걸음을 놀리면서 자신의 꿈과 한 걸음씩 가까워져가고 있는 반면에 나는 지금 어디쯤의 위치에서 기약 없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인지. 초등학생 때부터 ‘글을 쓰고 싶다’, ‘음악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음에도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기대와 소신 없는 삶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끔 조용하게 내 꿈을 스스로가 가슴 한 켠에 억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든다. 초등학생 땐 단지 막연하게 하고 싶은 것만 있었고, 중학생 때는 스스로 돌이켜 보아도 목이 메고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사람답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진로에 대한 걱정을 해 본 적이 없고, 다시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꿈을 펼쳐보려고 하니, 다시금 주위 사람들의 만류와 오해, 불신과 폄하가 눈에 들어온다. 이것은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었고, 자아의 정체성이 없었기 때문에 꿈이라는 집의 토대를 깔끔히 다지지 못 했던 것이고, 그렇기에 누군가를 탓하지도 않고 또 탓해서도 안 된다. 다만 내가 초등학생 때 소신 있게 말을 했더라면, 그 때부터 쉴새없이 우직하게 걸어왔더라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지금 살아가는 순간순간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씁쓸한 웃음이 나올 뿐이다.
다시 책의 주제와는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글의 서두에서 말했듯이, 내가 공부와 독서, 두 가지를 전부 다 놓아버리게 된 게 언제부터인지를 모르겠다. 꿈에 대한 진로는커녕 하루하루 어른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는 착각과 오만 속에 빠져서, 일종의 파업 수단으로서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과거의 나를 돌이켜봤을 때 드는 생각이다. 어른들이기 전에 먼저 저마다의 고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부모님의 말씀은 잔소리가 아닌 진심 어린 충고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표현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단지 듣는데 조금 껄끄럽다고 해서 서로와의 마찰과 무시를 야기했던 내 과거의 모습과, 단지 자신의 꿈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잘못하면 한 나라의 운명을 뒤바꿔 놓을 수 도 있었던 책 속의 주인공의 모습을 비교해보면서 읽은 이 책은 단순히 호기심에 찾던 SF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이 아닌 정말 눈과 마음 두 것으로 읽을 수 있었던 책이 아닌가 싶다. 정말 오래간만에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