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사상에 대해》
1. 칸트 사상에 대한 이론 개관
칸트는 인간은 이성을 가진 존재로서,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본능에 위배되는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무엇을 ‘해야 한다’라는 당위의 개념을 적용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근거로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 법칙의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기에 항상 의무를 이행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인간은 어떠한 도덕법칙에 의해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이 칸트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칸트의 도덕법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의지’가 무엇인지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선의지’란 어떤 상황에서는 선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악할 수도 있는 가변적인 선이 아니라 무조건적이며 절대적인 선을 의미한다.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무엇 때문에 이래야 한다’라는 의무가 있을 때, 이것은 선의지가 될 수 없다. 어떠한 조건에 의한 것은 선의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칸트는 이러한 선의지가 의무에 의해서 행위 된다고 보았고, 의무를 도덕적 삶의 중심에 놓았다. 의무는 인간이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키려 할 때, 어리석은 행동을 하려고 할 때, 인간의 행동을 통제시켜주는 기능을 한다.
칸트의 사상에 있어 ‘선의지’와 함께 또 중요한 것이 ‘실천이성’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실천이성’이란 인간이 어떤 법칙에 따라서, 즉 준칙에 따라서 그 자신의 행위를 결정하는 능력을 말한다. 칸트는 인간은 이성을 가진 존재로서 도덕적 행위를 하는데 있어서,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경험적 욕망을 초월하려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때 이러한 초월을 유도하는 것이 바로 실천이성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준칙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준칙이란 한 사람이 자신의 행위에 있어서 따르려고 선택하는 일반적인 규칙이라고 정의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정의했을 때, 준칙은 개개인의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도덕법칙에 일치할 수도 있고, 위배될 수도 있다. 따라서 칸트는 우리의 의지들이 도덕적으로 선한 것이 될 수 있도록 준칙이 보편적인 법칙에 맞는 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준칙이 보편적인 도덕법칙에 입각하는 것이라면 그 준칙을 인정하고, 만약 준칙이 도덕법칙에 어긋난다면 그 준칙들은 우리는 버려야 할 것이다.
결국 칸트에게 있어서 어떠한 법칙이란 도덕법칙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도덕법칙은 어떠한 개개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법칙이어야 하며 인격을 갖춘 모든 이성적 인간의 행위에 적용되어야 한다. 또한 도덕법칙은 어떠한 주관적인 의무감이나 당위성을 규정하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도덕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도덕법칙은 어떤 행위의 도덕적 가치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칸트는 어떤 행위의 도덕적 가치는 그 행위의 결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자의 준칙에 의해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칸트에 의하면, 어떠한 행위의 도덕적 가치의 여부는 결과에 있어서가 아니라, 준칙에 의해서다. 예를 들어, 한 아이가 엄마를 돕기 위해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여러 개 깼다고 했을 때, 결과적으로 나쁜 행위를 했다 했을지라도, 그 아이의 준칙은 엄마를 돕기 위해서 였기 때문에 이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동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어떠한 준칙이 도덕적 법칙이 되기 위해 충족시켜야 할 조건이 있다. ‘정언명법’이 바로 그것이다. 칸트에 의하면 명법은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가언명법과 정언명법이 그것이다. 가언명법은 조건에 의한 것이다. 예를 들어 “너가 건강하기를 원한다면, 규칙적인 생활을 해라”, “다른 사람들이 너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길 원한다면, 다른 사람들한테 친절하게 대해라” 등이다. 그러나 정언명법은 이러한 조건을 달지 않는다. 정언명법인 도덕법칙은 어떠한 조건도 없이 그 자체로서 목적인 것이며 무조건 적으로 따라야 하는 법칙이다.
정언명법은 보편법칙의 정식, 보편적 ‘자연’법칙의 정식, 목적자체의 정식, 자율의 정식 등으로 정식화 할 수 있다. 먼저 보편법칙의 정식은 자신의 준칙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 예외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보편법칙의 정식에 의한 말은 어떠한 사람이든지 누구든 간에 동등하게 ‘어떻게 하여야 한다’라는 명령에 예외 없이 따라야 한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쉽게 보편법칙의 정식에 대해 알아보면 이런 말들을 예를 들 수 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봐.”, “그 사람이 너한테도 이렇게 했으면 넌 좋을 것 같니?”와 같은 말이다. 보편적 ‘자연’법칙의 정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 법칙에 의해서 자연의 세계가 존재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보편 법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의 세계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인지를 고려하는 것이다. 보편법칙의 정식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목적자체의 정식은 인간을 언제나 목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이성적 존재, 즉 인간 모두가 목적자체라면 우리는 모든 인간에 대해서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 결국 이는 위에서 말한 보편법칙의 정식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다른 이성적 존재도 옳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위의 두 가지 정식, 즉 보편성의 정식과 목적자체의 정식으로부터 도출된 정식이 자율의 정식이다. 자율의 정식은 우리가 도덕법칙을 우리 스스로 형성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법칙의 지배를 받는 존재인 동시에, 그러한 법칙을 창조해 내는 이성적 존재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칸트는 모든 이성적 존재들이 공통적 법칙 하에 서로를 목적으로 대하는 그러한 하나의 왕국, 체계를 이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이성적 존재들은 목적왕국의 구성원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공통법칙을 세우는 데 있어서, 모든 이성적 존재들이 단순히 법칙을 지켜야 하는 의무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법칙을 세우고 왕국을 다스리는 지배자로서의 역할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칸트의 사상에 대해 많은 것을 논했지만, 자유의 문제에 대해서 간과하고 갈 수 없다. 칸트는 자율과 타율에 대해 특별한 설명을 제시하였는데, 칸트는 우리가 이성에 의한 법칙에 의해 행위 했을 때만을 자율적으로 행동했다고 보았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이성이 아닌 자신의 욕구나 행복을 행위의 동기로 선택했을 때 자율성을 상실했다고 본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칸트에게 있어서 도덕적인 삶이란 인간적인 느낌이나 감정에 의한 삶에 대한 거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칸트가 말하는 도덕적인 삶은 자유 의지와 자유로운 행위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의지와 행위가 결코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칸트는 우리에게 자유의 문제에 대한 과제를 남겨 놓았다. 과연 이 세계에서 자유는 가능한 것인지, 인간을 자유로운 존재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 자연의 일부인 것인지 등에 대한 문제이다. 자유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결국 인간의 자유로부터 도출되는 도덕성 또한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이론에 관한 나의 입장
칸트의 사상은 도덕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 동안 살아오면서 배워온 도덕법칙들이 왜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는지 그것에 대한 설명을 제시해 준 것 같다. 그러나 칸트의 사상에 전적으로 다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칸트의 사상을 공부하면서 느낀 점은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와 할머니가 물에 빠졌다고 했을 때, 단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다면 누굴 구해야 할지에 있어서 칸트에 사상에 입각하면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칸트가 말하듯이, 도덕적 법칙에 의거하면 어린 아이와 할머니 둘 다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선택의 딜레마에 있어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 주지 못하는 것 같다. 또한 나의 개인적인 생각과 맞지 않는 것이 있다면, 칸트는 지나치게 정해진 도덕법칙의 의무를 강조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도덕적인 의무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하길 원하며, 나름대로의 행복의 기준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칸트는 사람들의 이러한 생각은 수단에 불과한 것이며 오직 선의지만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간주했다. 과연 사람들은 얼마나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을 통제하고 도덕적 법칙의 의무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여기에 의문을 던져보고 싶다. 오히려 칸트의 사상은 구체적인 도덕적 삶을 제시해 주기 보다는 이론적인 사상에 머물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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