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 소주,무석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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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남경 소주,무석 여행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2010년 10월 1일, 아침이 밝고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분주했다. 미리 예정되어 있던 여행의, 1일부터 3일까지 2박 3일 간 南京,无,州를 향한 여행의 첫째 날 아침이 왔기 때문이다. 중국에 온 이후 첫 여행이라는 기대감과 설레임 때문인지, 나는 그 날 따라 평소보다, 그리고, 남들보다 더욱 더 이른 시간에 일어났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소풍 전 날 잠 못 이루고, 아침에는 빨리 일어났던 어렸을 적의 나 같았다. 눈을 뜨자마자 부리나케 씻고 나니 할 일이 없었던 나는 컴퓨터를 켜고 우리가 가게 될 세 곳에 대하여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南京의 이미지 검색을 하자마자 中山陵이 사진과 함께 검색 결과로 나왔다. 中山陵이 무엇일까? 혹시... 라는 궁금함에 中山陵을 검색하자 나의 궁금증은 바로 해결 되었다. 中山은 文의 호(號)인데, 文이 1925년 자기가 주도한 民革命이 한창일 때 北京에서 객사한 뒤로 介石에 의한 북벌이 이루어진 1927년,장례는 국민정부 치하의 南京에서 국장으로 행하여지고 紫金山麓에 그 유체를 매장하게 된 것이다. 후에 국민정권은 台으로 옮긴 뒤, 台北에 中山陵을 만들었으나, 진짜는 南京에서 中共정권에 의하여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난 文에 대하여 수업시간 이외에는 관심을 가졌던 적이 없는 듯 하다. 하지만 우리가 南京을 갈 예정이고, 인터넷 검색 결과에도 中山陵이 제일 첫 화면에도 나왔으니, 이 곳을 갈 것이 분명하리라 생각했다. 슬슬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无는 南京에 비해 사진들이 많이 나오지 않아서 궁금증을 더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太湖였다. 그 외에는 대부분 无라는 도시에 관한 사진이였다.
그리고, 州는 찾아보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도 자주 들어봤던 杭州와 州였기 때문에 미리 알아보고 가는 것 보다는 기대하고 있다가 직접 가서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인터넷으로 조금의 정보를 얻고, 약간의 기대감을 안고 우리는 모두 약속장소로 향했다.
정문에 도착하니 대형버스 한 대와 세 사람이 보였다. 그 분들은 2박 3일동안 우리와 함께 할 버스기사님과 두 분의 가이드셨다. 인사를 하고 출발하기 위해 바로 버스에 올랐다. 출발과 동시에 가이드는 우리의 여행 일정과 갈 곳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그 날은 南京이였다. 오늘 아침에 찾아 본 中山陵을 그 날 바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설명을 듣다가 지난 밤의 잠이 부족했는지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들 자고 있었다. 잠시 후 가이드께서 마이크를 잡더니 이제 南京에 도착했고, 총 두 곳을 갈 건데, 첫 번째는 中山陵이라고 했다. 얼마 쯤 더 달리자, 산이 보이고 우리는 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잠시 후 차가 멈추고, 가이드는 여기서 점심을 먹고 바로 中山陵에 간다고 했다. 정말 점심을 먹은 후 지체할 것 없이 바로 中山陵으로 향했다. 제일 처음 느낀 것은 사람이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가이드도 한 마디 거들었다. 평소에도 사람이 많지만, 오늘은 특히나 더 많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날은 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곳곳에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있었다. 公安인 듯 했다. 양 쪽에 숲이 우거진 길을 따라 걸어가자, 반달모양의 광장이 보였고 동상과 커다란 돌로 된 문이 보였다. 그리고 저 멀리 中山陵으로 생각되는 건물이 보였다. 이 곳 부터는 각자 구경하기로 하고 정해진 시간에 다시 이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떨어지지 않고 모두 같이 앞에 보이는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딱 봐도 상당히 많은 계단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 곳의 계단은 총 392계라고 했다. 계단의 중간에는 커다란 화단이 있는데, 上海 EXPO의 마스코트인 海 모양의 화단이었다. 사진을 찍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다 보니 어느 새 정상에 도착하였다. 그 곳엔 文의 제단(祭壇)이 있었다. 그 뒤에는 묘실(墓室)이 있었고, 묘실 안에는 文의 좌상(坐像)이 있었다. 제단의 위에는 이 사진처럼 금으로 된 세 단어가 쓰여 있다. 이 글자는 文이 제창한 三民主로서, 오른쪽부터 민족(民族), 민생(民生), 민권(民權)이라 쓰여 있다. 묘실 안으로 들어가려면 옆에 따로 내어져 있는 길을 따라 가야하는데 답게도 사람이 너무 많아 줄이 굉장히 길었다. 줄을 서서 들어가면 약속한 시간을 맞추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바깥에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정상에서 제단을 등지고 바라 본 풍경은 굉장히 멋있어서 절로 사진을 찍게 만들었다. 안에는 들어 가보지도 못한 채 발걸음을 돌리고 약속시간에 맞춰 내려 왔다. 모두 모이고 우리는 두 번째로 江로 향했다. 이 곳은 산성(山城)이였다. 계단을 따라 산을 오르고, 성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우리나라의 궁궐과 비슷하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가운데 계단이 있고 복층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계속 오르고 올라 다다른 성의 정상에서는 성 주변 南京의 모습을 훤히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첫 날의 여정을 끝내고 우리는 으로 향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남은 자유 시간은 夫子苗街에서 보냈다. 주변에 과 관광객이 많아서 그런지 굉장히 번화가였다. 휘향찬란한 조명에 건물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저녁을 해결하고 잠시 거리 구경을 하다가 숙소로 돌아와서 쉬었다. 그렇게 첫째 날의 밤은 저물었다.
둘째 날, 우리는 9시에 두 번째 여행지인 无로 향하였다. 한 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无의 여행지는 渚였다. 섬 전체의 모양이 자라의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섬은 배를 타고 가야해서 우리는 선착장으로 향했다. 잠시 뒤 경적소리와 함께 배가 들어오고, 가림막이 열리자 자리를 잡기 위해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배를 타고 20~30분 정도 가니 섬의 선착장에 도착하였다. 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섬 안쪽으로 길을 따라 걸어갔다. 섬 안에서 내가 갔던 곳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나라 남산 타워에 가면 철조망에 연인들의 사랑이 영원하길 빌며, 두 개의 자물쇠를 걸어 놓는 곳이 있다. 渚에도 그런 곳이 있었다. 이 사진처럼 가운데 큰 자물쇠 두 개가 있고 주변의 기둥들 사이를 철로 된 줄로 이어 놓았다. 이 줄에 매달린 것이 모두 자물쇠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연인과의 행복한 사랑을 빌며 자물쇠를 걸어 놓은 것이다. 이 조형물 바로 앞에는 자물쇠를 살 수 있는 조그마한 사원이 있다. 이 모든 자물쇠에는 열쇠 구멍이 없어서, 한 번 잠그면 자르기 전에는 풀리지 않는다. 많은 사진을 찍고 섬을 뒤로 한 채, 우리는 돌아가는 배를 타기 위해 다시 선착장으로 향했다. 강을 건너고 버스에 올라 두 번째로 우리가 향한 곳은 州였다.
드디어 책과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州를 내 발로 밟게 된 것이다. 州의 어귀에 다다르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두 곳을 가게 될 것이라 했다. 그 중 첫 번째로 갔던 곳이 拙政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州는 외국에서도 유명한 관광 명소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외국인이 정말 많았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듯 했다. 拙政는 州에서는 가장 큰 정원 중 하나이자, 州의 4대 명원 중의 하나로, 중국 강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고 했다. 특히나 이곳에는 연꽃이 굉장히 많았다. 날씨가 좋았으면 더 볼만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도 꽤 오고, 가이드분도 걸음이 빨라져서 많은 구경을 하지는 못했다. 너무나 유명한 곳이라 들었지만, 제대로 보지 못한 나는 嘉으로 돌아온 후에 拙政을 인터넷에서 뒤적거렸다. 拙政은 明代 正德帝 4년 서기 1509년에 건립을 했으며, 王臣이 조정에서 물러나 이곳을 지었고 拙政이라는 이름도, 그가 晉나라의 시인 潘岳의 閑居賦 중에서 따온 것이라 하였다. 조정에서 물러난 王臣은 원나라 때 大弘寺라는 절이었던 이곳을 인수하여 개인 정원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을 개조할 때, 文征明이라는 明代의 유명한 예술가가 참여하였다고 한다. 王臣은 몇 년 후, 다시 이곳을 팔게 되는데, 그는 비단장사로 많은 돈을 벌었으며, 비단장수 王서방의 원조가 되었다고 한다. 拙政의 연못 拙政은 明代 후기의 건축물이었는데, 淸代의 康熙帝 때까지 방치되었다가, 다시 한 번 개축을 거치고, 乾隆帝 때는 서원으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의 拙政은 초기의 흔적보다는 후기의 양식이 훨씬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곳은 1997년 州林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둘째 날의 여정도 끝이 났다. 차를 타고 에 도착하여 근처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잠깐 거리를 거닐다 돌아왔다. 궂은 날씨 탓에 둘째 날의 밤은 굉장히 무료했다. 들어와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날은 깊어져갔고, 그러다 잠이 들었다.
셋째 날, 동이 트고, 그 날도 어김없이 9시에 출발했다. 우리의 마지막 행선지, 그 곳은 州의 木古이었다. 木古에 도착하니 첫째 날 보았던 다른 가이드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향한 곳은 木古에 위치해 있는 家花이다. 이 저택의 건물 모양은 한옥의 양식과 비슷하며, 인상 깊었던 점은 이 곳이 춘하추동(春夏秋冬) 네 개의 작은 정원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저택 안에는 4개의 크고 작은 연못이 있고, 그 안에는 잉어가 살고 있다. 또한, 잉어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가이드를 따라 걸어가다 보니 돌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정자(亭子) 비슷한 건물이 보였다. 호기심에 돌을 밟고 밟아 올라가 보니 저택 주변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궁금증이 생겨 가이드에게 이 건물의 2층은 왜 다 창문이 닫혀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2층은 딸이 살았었는데, 하인들이 딸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창문을 모두 닫아 놓고 지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다시 밑으로 내려온 뒤, 2층은 어떨지 보고 싶어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가, 중간쯤 올라가니 조금 눈치가 보여서 도중에 다시 내려왔다. 그렇게 저택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역시 사람이 많았다. 길을 걸어가는 중간 중간에 볼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의 코스프레처럼 사람들이 옛 중국의 복장을 입고 너도나도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러나 旗袍를 입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게를 꼬치에 꽂아